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총선 전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자 경선 과정에서 대리투표를 한 통진당원 4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간 부산, 광주, 대구지법은 대리투표한 통진당원 11명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전원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6개 법원에서 같은 사안에 대해 내려진 유죄 판결과 배치될 뿐 아니라 상식과도 동떨어진 것이다. 이 판결을 두고 민주주의 원리와 상식을 저버린, 위헌·위법 재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무죄판결의 이유로 “정당의 당내 경선은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어 반드시 공직선거에서 헌법이 규정한 보통·직접·평등·비밀 투표 등 선거의 4대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정당의 대리투표가 불법이 아니라는 이번 판결은 일반의 법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진보당의 경선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검찰은 대리투표한 각 지역의 통진당원 510명을 업무방해죄로 기소했고 이 가운데 지금까지 11명이 벌금 200만원, 또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씩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무죄판결은 없었다. 검찰이 대리투표 행위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아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했듯이 이번 판결을 둘러싸고 법리 논쟁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헌법과 법률, 민주주의의 가치, 건전한 국민적 상식과 배치된다. 보통·직접·평등·비밀을 내용으로 하는 선거의 4대 원칙은 초등학생의 반장선거에서도 지켜진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권자가 직접 자기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는 원칙은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에는 ‘정당이 공직 후보자를 추천할 때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만 돼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리투표도 민주적 절차라고 판단했는가. 그렇다면 중앙지법 판사의 판단 능력은 초등학생보다 못한 수준인 셈이다. 법률에 규정이 없다고 대리투표를 인정하게 되면 공직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각종 선거에서도 대리투표가 판을 치고, 결국엔 선거 무용론까지 나오고 말 것이다. 더 심각한 인식 능력의 파탄은 정당의 자율성 보장을 이유로 당내 경선에 공직 선거와 같이 선거 4대 원칙을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통진당원의 대리투표는 통상적 대리투표여서 선거의 본질을 훼손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재판부 판단대로라면 앞으로 공직·민간 부분의 각종 선거에서 대리투표가 판을 치게 생겼다. 대리투표가 자행된 통진당 경선에서 이석기·김재연 의원 등이 선출된 그 인과성을 잊어선 안 된다. 당연히 선거 4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재판부는 독립돼 있기 때문에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다. 법원이 2심, 3심제를 둔 이유는 독립된 재판으로 인한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검찰이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잘못된 판결”이라며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상급 법원에서 사실상 대리투표를 조장하는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야 한다.

서성훈(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