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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협상의 성공은 무조건 대박인가
판문점 만남
기사입력: 2019/07/08 [10:05]  최종편집: ⓒ TOP시사뉴스
이도선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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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협상의 성공은 무조건 대박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주말 우리나라에서 한바탕 쇼를 벌이고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후 곧바로 서울로 날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머문 시간은 만 하루가 될까 말까다. 이 짧은 시간에 한미정상회담과 재계 간담회 등 많은 일정을 숨가쁘게 소화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비무장지대(DMZ) 방문이다.

▲     판문점에서의 트럼프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


  
여느 미국 대통령처럼 DMZ 초소 방문에 그쳤다면 신문에 한 줄 나는 게 고작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까지 가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함께 남북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는 ‘지상 최대의 쇼’를 펼쳤다. 그는 서울로 향하는 날 아침 판문점 회동을 트위터로 제안해 평양의 동의를 받아내고도 끝까지 “2분쯤 만나 악수나 할 것”이라고 눙쳤다. 그러고는 김 위원장과의 53분 독대로 ‘깜짝 만남’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TV 리얼리티 쇼 진행자 출신다운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영토에 발을 디디고 미국과 북한의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만난 사실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상대방을 연신 치켜세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올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앙금을 말끔히 털어낸 듯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끄는 실무협상단이 이미 꾸려져 있다며 제3차 북미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적대 관계 종식과 평화 시대 시작”을 선언했고 여당은 “세기의 만남”이라고 포장하는 등 마치 엄청난 일이라도 해낸 듯 들뜬 분위기다. 북미 관계가 개선된다는데 굳이 초치고 나설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그 결과로 대한민국의 안보가 백척간두에 놓이는 상황은 결코 좌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비핵화 협상 목표를 지금까지의 폐기에서 동결로 선회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뉴욕타임스는 현 상태를 수용해 북핵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려는 구상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형성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제부터는 북핵 폐기 협상이 아니라 핵군축 협상으로 변질된다는 얘기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는 점에서 폐기가 아닌 동결은 우리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다. 대북 강경파로 알려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타임스 보도를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지만, 미국이 빅딜(일괄 타결) 대신 북한이 요구하는 스몰딜(단계적 타결)이란 패를 만지작거리는 기류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 본인부터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외칠 때와는 말이 많이 달라졌다. 판문점 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이 최근 두 차례 발사한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대해 “다른 나라도 다 하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미국을 곧장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아니라면 문제 삼지 않겠다는 태도다. 대북 제재를 유지하겠다는 발언에 힘이 별로 안 실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방향 전환은 내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외교 치적’이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식의 북미 협상은 한사코 막아야 한다. 협상이 성공해도 북핵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미 협상이 성공하기만 하면 무조건 대박인 양 호들갑 떠는 몰지각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진 우리 대통령은 ‘셀프 패싱’을 감수하면서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멍석만 깔아주고 자신은 뒷전으로 밀려났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청와대는 “국면 타개를 위한 필수적 조연”이란 그럴듯한 수사를 들이댔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자기 안방에서 자국의 안보를 다루는 정상회담에 끼지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자초하진 않을 게다.

▲    세 정상들의 만남



  
거듭 강조하건대 북핵 협상은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자신이 당사자라는 사실을 한시도 망각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 5,100만 명의 안전이 한낱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용  리얼리티 쇼의 제물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 제안과 김 위원장의 과감한 호응으로 이뤄진 판문점 회동이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며 우리 정치와 외교도 상상력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그 같은 파격과 과감이야말로 두 사람이 처해 있는 다급한 입장의 반증이다. 철통같은 한미 공조와 강력한 대북 제재만이 북핵을 확실하게 제거하는 지름길이라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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