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좋은가, 전쟁이 좋은가? 별다른 설명이나 조건도 없이 묻는다면 어떤 답이 나올까. 이런 질문에는 ‘평화는 좋은 것’이라는 답을 유도하기 위한 함정이 숨어 있다. 경제 앞에 평화를 갖다 붙인 ‘평화경제’라는 말이 등장했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겠다며 "남북 간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평화경제가 실현되고 통일까지 된다면 세계 6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며 ‘평화경제’를 다시 강조했다.
북한은 이 같은 구상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고 조롱하며 "남한과 다시는 마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사일을 또 쐈다. 이런 판에 ‘평화경제’를 말하는 건 허망하기 짝이 없는 짝사랑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북한이 쏟아낸 막말을 보라. “미국과 직접 담판으로 비핵화 협상을 마무리할 테니 한국은 중간에서 걸리적거리지 말고 빠져라” “오지랖 넓은 촉진자, 중재자 행세를 그만하라” ”맞을 짓 하지 마라” “겁먹은 개” “청와대 새벽잠 제대로 자기는 글렀다" ”바보. 똥, 도적” 등등의 비방과 조롱과 위협과 험악한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아무런 대꾸조차 못 하고 있다. 구겨질 대로 구겨진 우리 국민의 자존심은 어쩌란 말인가.
남북 경제협력의 전제조건은 북한의 비핵화다. 북한은 핵보유국임을 자랑하고 있을 뿐 핵을 포기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러한 북한과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를 실현하자고? “통일은 대박“이라던 전 정부의 알맹이 없는 말을 연상시킬 뿐 ‘평화경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우리의 자유시장 경제와 북한의 사회주의 통제경제가 어떤 경제협력을 할 수 있으며 협력의 시너지 효과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세계 최빈국 북한과의 경제협력은 일방적 퍼주기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은 어떤 과정을 통한 어떤 통일인가도 분명히 해야 한다.
평화를 노래한다고 평화가 오고 전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전쟁을 원하지 않더라도 적이 도발하고 공격해 오면 싸울 수밖에 없다. 그게 전쟁이다. 적이 전쟁을 준비하며 온갖 도발을 하는데도 제대로 대비하지도 않고 평화를 노래하면 그건 바보짓이다. ‘평화를 바라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문 대통령은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만 우리는 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듣기에 좋은 말 같지만 비대칭적 무기인 북핵을 막을 방안이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일본은 물론 어떤 나라와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평화경제’는 대안이 아니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할 것도 아니다. 경제 체질 강화를 서둘러 기술개발과 투자, 생산성 높이기, 규제 풀기, 기업 활력 돋우기를 지속해야 한다. 일자리 사정은 악화일로다. 재정투입으로 노인들 일자리만 늘렸을 뿐 경제활동의 중추인 30~40대와 제조업의 일자리는 감소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로 추락했다. 생산과 투자는 물론 수출도 계속 뒷걸음이다. 실업률은 20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고 특히 청년체감실업률은 25%까지 치솟았다. 경제 실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게 가짜 뉴스라고 못 박을 일인가.
경제는 계속 내리막인데 중국의 한국 무시와 일본과의 갈등, 북한의 한국 따돌리기에다 한·미동맹은 틈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당면해 있는 현실이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언급했지만, 비록 누가 흔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드는 건 우리의 몫이다. 시급한 건 경제 살리기와 안보 다지기다. 이보다 급하고 중한 게 있는가. 국민이 안심하고 먹고살 길을 여는 게 정권의 책무다.
필자소개
류동길( yoodk99@hanmail.net)
숭실대 명예교수 남해포럼 공동대표 (전)숭실대 경상대학장, 중소기업대학원장 (전)한국경제학회부회장, 경제학교육위원회 위원장 (전)지경부, 지역경제활성화포럼 위원장
저 서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 숭실대학교출판부, 2012.02.01 경제는 마라톤이다, 한국경제신문사, 2003.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