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대와 세상을 반영한다.
▲ 92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수상하는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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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영화가 들어온 것은 100여년이 되었다.
한국 최초의 극영화는 1919년 만들어진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구투(義理的仇鬪)>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 작품은 현재 필름이 남아있지 않고 1919년 10월 27일에 개봉되었다는 기록만 전해지고 있다. 당연히 이 작품을 직접 보신 분들 중 생존해 있는 분들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전해지는 한국 영화의 역사를 볼 때 2019년은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한 해가 된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활동사진(영화) 이후 24년 뒤에 한국에서도 극영화가 제작되었고 어느덧 100년이 흐른 것이다.
100년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라는 작품으로 전 세계의 영화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헐리우드의 아카데미시상식에서 2월10일(미국9일저녁) 외국영화로는 사상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아래 오스카상)에서 돌풍을 일으킨 <기생충>이 결국 하나의 역사가 됐다. 감독상에 이어 해당 시상식 최고상에 해당하는 작품상까지 차지한 것. 총 4관왕이다. 이로써 <기생충>은 한국영화 101년 역사상 첫 본상 수상과 더불어 오스카 역사상 비영어권 영화가 최고상을 받는 첫 사례로 남게 됐다.
이제까지 비영어권 영화에서의 선전은 장이모, 첸카이커, 그리고 이안 등 중화권 감독이 뚫어왔던 북미와 유럽권의 높은 현실의 벽을 이미 봉준호의 <기생충>이 뛰어넘었다. 그 뛰어났던 이안 감독 역시 아카데미에선 외국어영화상과 감독상 이후로 인연이 없기 때문. 평균 53세, 백인이 주축인 아카데미 회원 구성, 그리고 전쟁 영화 등의 특정 블록버스터의 손을 들어줬던 전례를 봐도 <기생충>의 현재 행보는 매우 특별하다고 봐도 좋겠다. 지난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가 각종 조합상을 휩쓸며 아카데미 최초의 비영어권 작품상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끝내 무산됐었다.
시상식이 열리기 전 < LA타임스 >의 기사에서는 "만약 아카데미 작품상을 최초로 수상하는 비영어권 영화가 나와야 한다면 그 작품은 할리우드가 스스로 제작 환경을 수치스럽게 여길 수 있게 하는 작품이어야 한다"며 "<기생충>이 바로 (아카데미의) 더 나은 역사를 만들어 낼 작품"이라 짚었다. 동시에 이 매체는 92년 아카데미 역사를 언급하며 그 단체가 과연 변화를 원하기나 할까 의문을 제기했다.
▲ 한국영화 100년의 쾌거 기생충 배우들과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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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곧 현실이 되고 말았다.
한국 영화 기생충은 오스카 역사를 산산조각 냄으로써 이제는 전 세계는 바벨탑을 쌓았던 역사의 저주에서 벗어나 모든 세계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진정한 세계화의 진행을 앞당긴 것이다. 골든 글로버 상에서의 봉준호의 수상에서의 말이 생각난다.
▲ 지난 골든 글로버 시상식에서의 봉준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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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믿을 수 없다"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어 "서브 타이틀(자막)의 장벽을 1인치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이로써 같은 시대를 사는 우리들은 마침내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는 새로운 바벨탑의 역사를 재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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