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변성기도 오지 않은 앳된 소년이 가요경진대회에서 구성진 목소리로 불러 어른들 심금을 울린 노래 제목이다. 바람에 날리는 티끌이 풍진이므로 ‘이 풍진 세상’은 신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요즘 세상과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소년의 노래가 우리네 가슴에 와 닿은 것도 그래서인 모양이다. 그렇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으로 국제사회가 가뜩이나 어수선한 터에 보기 드문 전염병이 지구촌을 덮친 탓으로 어쩔 수 없이 움츠리고 살아가야 하는 이 난국을 어떻게 벗어날지 앞이 안 보인다. 이럴 때일수록 온 국민이 단결하여 대처해야 하거늘 눈앞에 벌어지는 나라꼴에 난감할 따름이다. 정말 ‘이 풍진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가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우리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것은 좌우의 대립이다. 좌우 대립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금처럼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까지 분명하게, 그리고 극렬하게 갈라놓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좌우 대립도 모자라 좌는 좌대로 계파를 나누고, 우는 친박이니 비박이니 싸우더니 이젠 어떤 패거리로 조합을 짜야 자신들 권익을 최대한 보장받을지 고민할 뿐이다. 정의를 살려 나라를 구하겠다고는 빈말이라도 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이미 외세를 끌어들여 상대편을 말살하는 중이고, 다른 한쪽은 맞서 볼 의지도 없이 세월만 속절없이 까먹고 있다. 역사적으로 나라의 내분이 극심할 때마다 어떤 결말로 끝났는지는 초등학교 교과서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굳이 역사책을 들춰 보지 않아도 35년간 겪은 나라 없는 설움과 동족끼리 피 흘린 비극은 우리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기성 정치인들의 표리부동한 작태도 못지 않은 꼴불견이다. 어제까지도 그나마 믿고 의지하려 했던 그 거룩해 보이는 정치지도자가, 인상이 좋아서 인간적인 매력까지 풍기던 그 지도자가 하루아침에 표변하여 명명백백한 거짓말로 억지를 부리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지도자라는 인물들에게 실망을 지나 분노가 치솟는다. 이런 자들은 의도적으로 가면을 쓰고 우리를 속여 마음을 훔쳐 왔단 말인가. 아니면 거절할 수 없는 협박에 변절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인가. 어떤 사연이건 내막이라도 알면 마음을 좀 다스릴 수 있으련만 상식으로는 판단할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이럴 때 아쉬운 것이 우리 생각을 이끌어 줄 올바른 언론이다. 그러나 언론은 이미 좌우 대립의 희생물로 전락하여 눈앞의 이익에 어긋나는 일은 못 본 척하거나 얼토당토않은 내용으로 왜곡해 우리를 실망시키기 일쑤다. 선악을 가리는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해야 할 법조계는 어떤가. 이들도 고질화된 파당 정치에 찌들어 제소리를 내지 못한 지 오래됐다. 그러고도 모자라 더 처절한 체질 개혁을 요구당하는 신세다. 힘없고 어리석은 우리 백성은 과연 누구를 믿고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인가. 사면에서 초가가 들릴 뿐이다.
그러나 세상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게 마련이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수 있다고도 했다. 어찌 이 풍진 세상이라고 한탄만 하고 있을쏜가. 눈을 부릅뜨고 활로를 찾아야 한다. 소위 정치인이라는 자들은 잊어야 한다. 특히 조금이라도 자신이나 소속 정당을 위해 거짓을 보인 인물은 절대 용납하지 않기로 다짐하고, 이를 분명히 보여 주자. 그래서 거짓말 정치인은 이 땅에서 씨를 말려야 한다. 그 대신 새로운 보석을 찾아야 한다. 혼자 찾는 것보다는 둘이서, 둘보다는 셋이서, 더 많으면 더 좋겠지만 숫자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무엇보다도 서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당장은 존재감이 약하고 언론의 무시와 견제를 당할지라도 언행이 올바른 인재를 찾아보자. 말만 잘하는 사람은 안 된다. 실제 행동으로 보여 주는 인재라야 한다. 5천만 인구 중 분명히 보석은 있을 것이다. 보석은 흙에 파묻혀 있어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알게 모르게 지원해 그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믿음을 주자. 그들 역시 이 풍진 세상에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 조국에 이어 윤미향의원의 부정의혹 해명 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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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흐르게 마련이고 사악한 정권은 언젠가 무너지게 돼 있다. 대한민국은 그냥 없어질 시시한 나라가 결코 아니다. 반드시 때가 올 것이다. 다만 언제 오느냐가 문제다. 이는 국민이 얼마나 열렬히 바라느냐에 달려 있다. 국민이 외면한다면 정권이 바뀐다 하더라도 더 사악한 무리에게 점유되고 말 것이다. 망해 가는 와중에도 정권은 자주 바뀌는 나라를 그동안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결국 관건은 국민에게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나라가 어려운 때 백성이 먼저 나섰다. 백성은 누구인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부터 나서자.
필자소개
신부용 ( shinbuyong@kaist.ac.kr )
필자는 서울공대 토목공학과를 나와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교통공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유치과학자로 귀국하여 한국과학기술원(KIST)에서 교통연구부를 창설하고 이를
교통개발연구원으로 발전시켜 부원장과 원장직을 역임하며 기틀을 잡았습니다.
퇴임후에는 (주)교통환경연구원을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KAIST에서 교통공학을 강의하는 한편
한글공학분야를 개척하여 IT 융합연구소 겸직교수로서 한글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저서로는 우리나라 교통정책, 지방자치단체의 교통정책, 도로위의 과학, 신도시 이렇게 만들자,
대안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중국인보다 빨리 배우는 신한위 학습법 등 여럿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