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은 법무장관 부하가 아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작심 발언으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단연 화제를 모았다. 추미애 법무장관 취임 후 10개월간 ‘식물총장’으로 웅크리고 있던 윤 총장은 지난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감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추 장관의 인사권, 지휘권, 감찰권 행사가 모두 위법하다고 거침없이 규정하고, 추 장관이 자신의 권한을 뺏으면서 내세운 이유들은 모두 “중상모략”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많은 국민, 특히 숨죽이고 있던 검사들의 가슴을 뻥 뚫어 준 사이다 발언이었다.
부하란 군, 경찰 등 엄격한 상명하복 조직에서 하급자를 이르는 용어다. 공무원사회는 그러나 지위의 상하만으로 하급자를 부하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헌법상 대통령이 상위이고 대법원장이 하위이지만, 아무도 대법원장을 대통령의 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70여 년 헌정 사상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공격하고 부하로 취급한 전례가 없다. 둘은 상호 존중하였다. 이제껏 그렇게 지내왔다. 총장이 장관의 부하로 전락하면 준(準)사법기관인 검찰의 중립이 무너진다. 검찰청법 제8조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는 전제 아래 개별 사건의 수사에 한하여 특별히 장관에게 총장 지휘권을 부여한 것이다. 총장이 정말 장관의 부하라면 이런 규정을 굳이 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추 장관은 대검 국감 직전 윤 총장이 라임자산운영의 초대형 금융사기 사건에 야권 정치인과 검사들이 연루된 사실을 보고받고도 수사를 미루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는 사기 피의자의 옥중 편지와 진술에만 근거한 주장으로, 신빙성이 극히 의심된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검은 1시간 17분 만에 추 장관의 발표는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아니한 내용이라고 반박하며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또 발동해 윤 총장을 이 사건에서 배제시켰다. 지난 6월 ‘검언 유착 사건’에 대하여 발동한 지휘권이 빈손으로 마무리되었는데도 ‘아니면 말고’ 식의 총장 흔들기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대검 국감에 앞서 윤 총장의 기를 꺾으려는 선제공격의 성격이 짙었다. 추 장관은 “국민을 기만한 대검을 먼저 저격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동원하며 파상공세를 폈다. 마침내 윤 총장의 인내가 한계를 벗어나면서 추 장관의 치졸한 도발은 오히려 역공을 자초하는 결과를 빚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라임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윤 총장에게 힘을 확실히 실어 주었다. 그는 대검 국감 직전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는 제목의 입장문에서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위법이라며 날선 비판을 가하였다.
국감이 끝난 뒤에는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가 검찰 내부 인터넷 게시판에 추 장관의 인사권, 지휘권, 감찰권 행사는 모두 위법이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추 장관이 발끈하여 “개혁만이 답”이라며 보복을 즉각 예고하였으나, 그 예고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불과 며칠 만에 약 400명의 검사가 이 검사의 견해에 동참한다며 인터넷 연판장에 이름을 올렸으니 가히 ‘검란(檢亂)’이라 이를 만하다.
지난해 9월 국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의 적법 여부에 대한 감사를 감사원에 의뢰하였다. 감사원이 1년여의 진통 끝에 지난달 ‘조기 폐쇄는 경제성 축소 조작에 의한 위법행위’라는 취지의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하였다. 감사 과정에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감사를 회피할 목적으로 관련 문건 444건을 폐기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이 국회 보고에 이어 7,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를 검찰에 넘겨주었다. 수사를 의뢰한 셈이다. 자료를 검토한 대전지검이 이달 초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산자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가스공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였다. 추 장관은 이에 대해 “정치인 검찰총장의 정부 공격이며 권한 남용”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 두 법제 우두머리들의 공방과 질투,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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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이 드러나면 설령 정권과 관련된 사안이라도 수사에 착수하여야 하는 게 국민의 공복으로서 검찰 본연의 직무다. 이를 망각한 추 장관의 폭언이야말로 직권 남용이다. 게다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지휘권을 일선 검찰에 직접 행사한 것은 위법행위다. 정치인인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사법 방해 행위에 해당한다. 이 역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라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헛발질이다. 언론은 “이성을 상실했다는 말밖엔 할 수 없다”며 강하게 비판하였지만 추 장관은 반성은커녕 반(反)인권적인 휴대전화 잠금해제법을 추진하는 등 폭주를 거듭하며 마운드에서 강판당할 날을 스스로 재촉하고 있다. 임면권자인 대통령은 오불관언이다. 이젠 국민이 법무부(法無部) 장관을 끌어내리는 일만 남았다.
필자소개
김교창 (kyo9280@daum.net)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고문
법무법인 정률 (고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위원
(사)한국청년회의소 논설고문
저 서
주주총회의 운영
표준회의진행법교본
김교창의 시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