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늘리며 돈 푸는 게 경제정책인가
▲ 4차 재난지원금에 관해 발표하는 이낙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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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다가오자 정부・여당은 표심을 노린 ‘돈 풀기’ 작전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자영업자 손실보상금 지급을 선거 이전에 끝내겠다고 하다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자 선거 이후로 미뤘다. 그 대신 4차 재난지원금을 선거 이전에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단다, 지난해 총선 때처럼 또다시 돈 뿌리기로 재미를 보겠다는 속셈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들이 주장하는 손실보상법·이익공유법·사회연대기금법 등 ‘돈 풀기 3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함으로써 관계자들의 기대를 붙들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손실을 보상해 주는 방안의 법제화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빚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면 그런 조건은 별 의미가 없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덜어 주자는 걸 누가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손실을 따지고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서 졸속으로 서둘러도, 입법화해서도 안 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코로나 피해 보상은 무차별 지원이 아닌 선별 지원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 제시하는 손실보상액은 40조원~100조원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다. 이 큰돈을 마련하겠다고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국채를 매입하게 하는 방안까지 들먹인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는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1~2% 포인트 인상하는 방안도 거론한다.
이익공유제는 자유시장경제에 반하는 황당한 주장이다. 이익이 코로나로 얻은 것인지를 파악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데도 기업한테 이익을 나누어 갖도록 강제한다. 자발적 참여로 포장한 ‘기업 팔 비틀기’다. 사회연대기금법도 마찬가지다. 기업과 개인의 기부로 기금을 조성해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지원하겠다지만 ‘관제 기금’이란 비판이 거세다.
이래저래 올해 국가채무는 1,000조원에 이르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럴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50% 수준에 이른다. 그동안 재정건전성 지표로 삼았던 40%는 진작 무너졌다. 여권은 이 비율이 60%까지 오른다 해도 문제없다고 한다.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해야 할까? 국가채무에 대한 이자지급액만 해도 올해 21조원 이상이 들어간다. 재정 형편이 어렵더라도 돈을 써야 할 곳에는 제때에 써야 한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사정을 국민에게 소상하게 설명하고 구체적인 상환 계획을 밝혀야 한다. 고령화와 저출산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빚을 내서 흥청망청 쓰는 일만 벌여서는 나라가 온당할 리 없다.
표만 의식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은 재정 파탄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나라가 어찌되든 계속 돈을 뿌려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가 좋은 반면교사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며 정치권의 돈 뿌리기를 경고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정세균 국무총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고 비난했다. 물론 이 나라는 기재부의 나라가 아니다. 그렇다고 청와대나 민주당의 나라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나라다.
지금은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라 ‘문제는 정치야!’를 외쳐야 할 때다. 경제난도 정치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난을 코로나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만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8~19년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이미 세계 평균은 물론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큰 미국에 못 미쳤다. 잘못된 정책으로 내리막이던 한국 경제에 코로나 사태가 겹치면서 경제난이 더 악화한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극복된다 해도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것인가를 확신할 수 없는 것도 그래서다.
내년 3월에 치를 대선을 겨냥해 어떤 ‘돈 폭탄’이 터질지도 걱정이다. “정치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분노의 불이어서는 안 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가 귓전을 때린다. 정부・여당은 나라와 경제를 어디로 끌고 갈 것인가를 보여 주는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인가를 알 수 있을 게 아닌가. 빚을 마구 늘리며 돈을 펑펑 푸는 정책을 고집하면 나라가 어찌될지는 보나마나다.
필자소개
류동길 ( yoodk99@hanmail.net )
숭실대 명예교수
남해포럼 공동대표
(전)숭실대 경상대학장, 중소기업대학원장
(전)한국경제학회부회장, 경제학교육위원회 위원장
(전)지경부, 지역경제활성화포럼 위원장
저 서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 숭실대학교출판부, 2012.02.01
경제는 마라톤이다, 한국경제신문사, 2003.08.30
`정치가 바로 서야 경제는 산다` 숭실대학교출판국, 201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