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찍어 주고 개돼지 취급받을 텐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연일 온 나라를 달구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 특히 부동산정책 실패의 화룡점정을 찍은 게 이번 사태다. LH 직원 13명이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도 광명·시흥지구에서 100억 원대 땅을 사들인 사실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에 의해 이달 초 폭로된 게 발단이다. 정권의 온갖 비리와 불의에 굳게 입다물던 이들 친여(親與) 단체가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한 투기 의혹이 짙다며 감사원 공익 감사까지 청구하자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후보 배후설을 놓고 설왕설래하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은 4·7 보궐선거를 코앞에 두고 터진 초대형 악재에 전전긍긍하며 이런저런 대책을 마구 던져 보지만 약발이 도무지 안 먹힌다. 이번 선거는 어이없게도 여당 소속인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이 모두 성추행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치러지는 만큼 여당에는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 이미 용도 폐기된 가덕도 신공항을 밀어붙이는 무리수를 둔것도 어떻게든 상황을 역전시켜 보려는 속셈에서다. 하지만 LH 사태로 만사휴의가 됐다.
LH는 신도시 개발을 주관하는 공기업이다. 그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에 앞서 주변 땅을 매점하는 얌체 짓을 했으니 욕먹을 만도 하다. 보상 담당자들이 희귀 나무를 빽빽이 심어 보상금을 왕창 뜯어내는 ‘땅 투기 신공’을 발휘한 대목에선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집값과 전월세를 폭등시킨 정권을 향해 들끓던 사회적 공분이 마침내 폭발했다. LH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LH 직원들이라고 부동산 투자하지 마란(말란) 법 있나” “이게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인데 꼬우면 니들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등의 조롱성 글이 난무한 것도 국민을 격노시켰다.
정부와 여당의 허접한 대응은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지난해 12월까지 LH 사장이었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황당한 인식이 여론 악화에 단단히 한몫했다. 그는 “신도시 개발이 안 될 걸로 알고 취득했는데 갑자기 지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LH 직원들의 투기 행위를 두둔했다가 집중포화를 맞고 “불찰이었다”고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잦은 말실수와 해괴망측한 논리로 함량 미달임이 드러났는데도 임명을 강행했지만 3개월도 안 돼 또 하나의 인사 실패작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부 합동 조사도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LH와 국토부 직원 1만4천여 명과 직계가족을 전수 조사한 결과가 고작 투기혐의자 7명 추가뿐이고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은 1명도 없다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조사 대상인 국토부는 포함되고 검찰과 감사원은 배제된 정부합동조사반의 ‘셀프 조사’로 ‘셀프 면책’이 이뤄졌으니 애초부터 하나 마나 한 조사였던 셈이다.
불똥은 문 대통령 본인에게도 튀었다. 퇴임 후에 살 경남 양산 자택 부지에 포함된 농지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구입한 농지를 올 1월 대지로 형질을 변경한 것이나 LH 직원들이 가짜 영농계획서로 땅 투기를 한 것이나 뭐가 다르냐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은 문제의 농지 구입 당시 농사를 11년간 지었다고 신고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 대통령 부부가 직접 텃밭을 가꿨다는 측근들의 주장은 영농인들을 모독하는 망발이다.
문 대통령은 “좀스럽고 민망한 일”이라는 페이스북 글로 반격을 펼쳤다. 그러나 엉뚱하게 고(故) 노무현 대통령 사저까지 끌어들이며 일방적 주장을 늘어놨을 뿐 제기된 의혹에 대한 해명은 전혀 없었다. 야권은 물론 일반 국민 누구라도 품음직한 의혹에 대통령이 불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직접 감정적 대응에 나선 것도 매우 이례적이지만 대통령이 감히 국민한테 “좀스럽다”고 쏘아붙이는 강심장이야말로 민망하고 역겹다.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은 이게 끝이 아니다. 백배사죄도 모자랄 판에 느닷없이 “부동산 적폐 청산”을 외치며 전 정권을 교묘히 걸고넘어졌다. 부동산을 정쟁 도구로 삼지 말라며 “우리 정치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궤변도 폈다. 이 정권에서 자행된 신도시 땅 투기의 책임을 전 정권과 함께 지자는 건 언어도단이다. 신도시 지정이 없었던 박근혜 정권까지 조사 범위를 확대한 것도 물타기 꼼수다. 문 대통령은 사건 발생 후 2주일이나 지나 뒤늦게 사과한다면서도 적폐 타령은 멈추지 않았다.
무능하면 권력을 내놓을 일이지 허구한 날 전 정권 탓하는 못난 꼴 지켜보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난다. 요즈음 문 정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는 주부 논객 삼호어묵은 변 장관의 망언을 개탄하며 “이 인간이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이유는 무슨 짓을 해도 계속 찍어 주기 때문”이라고 썼다. 참으로 명쾌한 진단이다. 대한민국의 명운은 보궐선거에서 유권자가 어떤 심판을 내리는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를 빼앗기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른 암울한 역사를 되풀이할지, 아니면 국제무대에서 존경받는 강소국으로 계속 번영하는 미래로 나아갈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다.
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 편집위원장
언론인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