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최선을 다 했으니 괜찮다는 말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요즘 사회적 분위기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실패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전혀 괜찮지 않다.
영화 <혜옥이>는 그런 사회를 꼬집으며 우리가 현재 도달해 있는 사회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의 고단한 삶에 더해서 말이다.
영화는 모녀가 고시촌에 방을 얻으면서 시작한다.
쓰레기장 같은 방이지만 그 방에서 시험 봤던 사람들이 모두 합격했다는 말에 덜컥 그 방을 계약한다.
명문대를 졸업한 주인공은 그 방에서 행시 준비를 시작한다. 2년 만에 합격한다는 계획처럼 처음에는 순조롭게 진행된다. 임의로 보는 모의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첫해에 1차를 합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어도 그 이상의 성적은 내지 못한다. 주인공은 점점 자존감은 떨어지고 시험마저 포기하고 싶다.
영화 제목이 사람이름인 ‘혜옥이’이지만 혜옥이는 초반에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라엘’이 인 것 같은데 언제 진짜 주인공 혜옥이가 나오는지 궁금할 즈음 주인공 혜옥이가 나온다.
이름을 개명한 라엘이 그 주인공이며, 영화의 진짜 주인공 혜옥이로 말이다.
라엘은 어머니의 권유로 시험에 합격한다는 좋은 이름인 혜옥이로 이름을 개명한다.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주인공의 어머니 입장에선 한 가닥의 희망이었을 지도 모른다.
기독교식 이름인 라엘을 스님에게 받은 혜옥이라는 이름으로 바꿀 만큼 간절하기 때문이다.
라엘은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 것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머니의 소망에 반항하고 싶지 않으며, 동시에 혹시나 하는 기대 때문이다.
이름을 바꾸면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희망이지만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다.
그 이름으로 인해 고사장에서 곤란을 겪기도 하지만 어떤 불만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합격하지 못한 죄인으로 그런 불만을 말 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 번 시험에 떨어지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이력서에 원래 이름이었던 라엘을 적는다. 합격에 대한 희망을 버릴 때 혜옥이라는 그 이름을 함께 버린다.
주인공 혜옥이는 명문대만 졸업하면 앞으로의 인생이 다 잘 풀릴 것 같았지만, 엄마의 권유로 행시 준비를 하면서 점점 시험의 압박과 엄마의 기대에 위축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존감은 떨어지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다.게다가 결과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희망까지 잃어버린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세세히 그리며 같은 고통을 느낄 동시대의 젊은이의 삶의 무게를 보여준다.
부동산 주인은 혜옥이가 살았던 방을 합격생이 살았다는 거짓말로 속여 방을 계약 하게한다.
아르바이트 했던 고깃집의 사장은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고깃집, 카페 등 사업장이 여러 개 있는 사장으로 나온다.
학력을 넘어 사업적으로 성공한 것 같은 그도 고기를 속여서 판다.
기성사회는 그렇게 남을 속이며 자신의 이익을 창출하면서 젊은 세대를 농락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 지는 알지만 삶에 요령(?)이 없는 젊은이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들켰을 때 "네가 뭘 알아!"라는 고압적인 태도로 자신들을 정당화한다.
이런 기성세대를 만난다면 당연히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삶의 요령이 무엇인지, 그 삶의 요령을 보고 배워 자신도 그렇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보고 배워야 할 인물마저 없는 사회는 그래도 여전히 합격과 성공을 요구한다.
무조건 합격해야 하며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로하는 영화 <혜옥이>는 오는 8일 개봉한다.
/디컬쳐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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