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함(艦)의 2022년 항해 돌아보기
한 나라의 진로와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거대한 함선의 항해에 비유할 수 있다. 선체의 크기와 추진기관의 성능 및 항해 요원의 능력과 자질에 따른 운항의 속도와 효율성은 배마다 다르지만 개별 함선들은 선단을 이루거나 때로는 독자적으로 항해한다. 어떤 배도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또 안전하게 운행하고 싶어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고, 함께 운항하는 선단 내에서라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가능하다면 앞서가는 선단으로 이동하려고 몸부림친다. 이 배들은 워낙 거대해서 속도를 줄이는 것은 몰라도 상대적으로 속도를 더 내기는 너무 어렵고, 특히 이 거대한 함선의 항로나 항해 방향을 바꾸는 것은 지난한 모험이자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가끔은 앞으로 가지도 못하고 뒤로 밀려나면서 온갖 사고와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다를 자주 휩쓰는 폭풍우나 태풍 등도 각 배들이 독자적으로나 상호 협조해서 견디어 나가야 한다.
항해의 최종 책임자는 함장이다. 국가도 마찬가지이지만 일반 함정과 달리 함장뿐만 아니라 항해의 방향과 방법을 결정하는 책임과 권한을 갖는 항해사들도 함선 탑승자들이 선거로 뽑아 일정 기간 맡기는 제도를 택하고 있다. 함장이나 항해사가 승객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도리가 없는 구조다. 나아가 선거 결과 함장과는 노선(이념)과 망원경(인생관)이 다른 항해사들이 많이 나오면 불협화나 갈등이 불가피하게 생긴다. 때로는 선상 반란이나 반기, 선동, 명령 불복종 사태도 일어나고 각종 사고도 발생하지만 어쨌든 최종 책임자는 함장일 수밖에 없다. 함장은 승객들의 동의나 선택에 의하지 않고는 반항하는 항해사를 결코 갈아치울 수도 없으며 다른 함선으로 이동하도록 하선을 명령할 방법도 없어 계속 같이 가야만 한다.
이 항해에서 제일 중요하고 속도보다 더 엄중한 것이 방향이다. 이 거대한 함정이 상당 기간에 걸쳐 잘못된 쪽으로 항해했다면 방향을 틀어 바로 돌리기가 결코 쉽지 않고 그에 따른 부담과 비용이 엄청나다. 다른 경쟁 함정들은 종래의 방향과 좌표를 향해 꾸준히 전진하고 있는데 이 배는 우선 달라진 방향부터 바로잡기 위해 거대한 선체를 돌리는 데에 더 힘을 써야 하므로 속도나 효율성에 지장을 받고 나아가 그동안의 틀어진 항로에 익숙해진 승무원들과 승객들의 저항과 불평까지 감수해야 한다. 만약 앞서 근무했던 함장과 항해사들이 의도를 가지고 엔진 성능을 저하시키는 감속장치를 달기도 하고 한쪽 방향만 보이는 망원경으로 해적선과 다름없거나 불법으로 개조한 인접 함선들과 거래하거나 협력하는 관계를 맺었다면 성능과 방향을 정상적으로 돌리고 함선의 안전 항행을 회복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과업이다.
2022년 대한민국함의 항행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데에는 위에서 제시한 모형이 적절할 것이다. 우선 지난 3월의 함장 선거 결과가 이 배의 앞날에 얼마나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당시의 경쟁 후보가 당선됐더라면 현재까지 그의 행적과 그를 중심으로 한 집단의 사고와 행동, 그리고 새 함장 선임 이후 이 함선 내에서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 등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 함선의 항로, 위상, 상대적 속도와 같은 선단 내에서의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선거 결과는 한마디로 하늘의 축복이며 아직까지는 지속되는 천운이다.
함장이 소신대로 일할 수 없거나 항해와 관련된 많은 부분을 결정할 여건이 되지 않는 어려운 점도 위의 모형이 설명하는 대로와 같다. 다만 함장이 여건을 탓하며 어쩔 수 없다고 한탄만 하거나 자조하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때나 어느 곳에서도 함장은 함장이다. 어려운 여건일수록 함장의 역량과 통찰력은 더 돋보이는 법이다. 역사 속의 훌륭한 지도자들은 많은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성공한 인물들이다.
현재의 대한민국함 함장과 크고 작은 책임을 맡은 항해사, 기관사들은 이제 첫 번째 항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와 있으며 앞으로의 항해가 훨씬 더 길고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항해 경험에서 교훈을 얻고 목표를 향해 매진해야 한다. 덧붙여 강조하자면 국가의 모든 의사결정 단계에서 나라와 민족을 도외시하는 공직자나 공인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결정을 위한 고려의 우선순위 단계에서 나라와 공익보다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먼저 두고 생각하거나 앞서 배려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둘 다 이루지 못하거나 실패하는 것을 우리는 늘 목도해 왔다. 나라에도 좋고 그 결과로 자신이나 주변에도 당장 이익이 되는 일거양득은 유감스럽게도 거의 없었다는 게 역사의 가르침이다.
필자소개
임정덕 (jdlim@pusan.ac.kr)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효원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저 서
적극적 청렴-공기업 혁신의 필요조건, 2016
부산 경제 100년-진단 30년+ 미래 30년, 2014
한국의 신발산업, 산업연구원, 1993
K속도 한국 경쟁력의 뿌리, 2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