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협력체제 구축은 선택 아닌 필수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및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찬반 논란과 시위로 나라가 시끄럽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인지 ‘묻지마 찬성’ ‘불만족스러운 찬성’ ‘결사반대’ 등 반응도 각양각색이다. 모든 것을 종합하면 필자는 ‘불만족스러운 찬성파’에 속하지만, ‘결사반대자’ 중에는 나라의 안위나 국익은 안중에 두지 않고 ‘친일몰이’를 통해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차제에 대한민국을 흔들어 보겠다는 ‘위험한 사람’도 일부 섞여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미래를 향한 한일 안보·경제 협력 체제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추진 과정에서 개선해 나가야 할 대상일 것이다.
우선, 사전 여론 조성 과정을 생략한 우리 정부의 성급한 추진과 선제적 양보, 한국의 감성적 접근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성적 계산으로 대응하는 가해국 일본의 사무적인 자세, 식민지배 사과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색함, 가해자 일본 기업들의 야속한 침묵 등이 불만스럽다. 그래서 “왜 일본의 직접 사과가 없는가” “왜 한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서 배상해야 하는가” 등 당연한 볼멘소리들이 들린다.
대안도 없이 묻지마 식 맹비난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테면 ‘그때 그 천주교 사제들’은 또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한일 협력을 ‘매판·매국’이라고, 그리고 한·미·일 안보 협력을 ‘일본을 위한 한국 만들기’라고 비아냥거리면서 “대통령에게 역사적 퇴장을 명한다”며 ‘엉뚱한 포효(?)’를 하고 있다. 또한, 양국 간에는 독도, 과거사 등 일순간 관계 개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지뢰들도 있다. 그런데도 한일 양국에는 협력해야 하는 이유가 훨씬 더 많으며, 그중 핵심은 안보 문제다.
북한은 지난해 43회에 걸쳐 모두 103발의 각종 미사일을 쏘았고, 올해에도 ‘자유의 방패(FS)’ 연합훈련을 시비하면서 21발을 발사했다. 한미동맹 이완과 유사시 미군 증파 차단이 목적인 대미용과 한국을 군사적으로 압도하는 것이 목적인 대남용 무기들을 동시에 개발하는 이중(two-track) 전략을 구사하면서 그동안 닦아온 핵 실력을 과시했다. 특히, 최근의 대남용 무력시위는 꽤 충격적이다. 사일로(silo) 발사 탄도미사일, 해일을 일으키는 수중 핵어뢰 등 국군의 선제와 방어를 무력화하는 공격 수단들을 내보였고, 800m 상공 기폭실험을 통해 지상에 대한 핵무기의 파괴살상력을 극대화하는 시늉도 보였다. 이렇듯 중국 팽창주의와 가중되는 대륙으로부터의 안보 위협 그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된 북한 김정은의 핵 위협은 ‘친일-반일’ 논쟁이나 하고 있을 여유를 도무지 허락하지 않으며, 일본이 경우를 모르는 나라도 아니다.
자고로 안보는 ‘아파트 외벽’과 같다. 외벽 안에는 행복을 나누고 쉼을 즐기는 편안한 공간이 있지만, 바깥에는 삭풍이 몰아친다. 외벽이 무너지면 행복도 쉼도 번영도 시국미사도 없다.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한미동맹에 한일 안보 공조를 더해 북쪽으로부터의 위협에 함께 대처해야 하며,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도출한 안보 관련 합의들이 의미하는 성과는 절대 가볍지 않다. 한일 관계 정상화와 관련해 국민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불만족스러움’과 ‘불가피성’을 구분하는 냉철함이다.
(이 칼럼은 '문화일보'에 지난 3월27일 게재된 글임을 밝혀둡니다)
김 태 우 (defensektw@hanmail.net)
(현) 한미안보연구회 이사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전) 동국대• 건양대 석좌교수
(전) 대통령 외교안보자문교수
저 서
'북핵을 바라보며 박정희를 회상한다' 외 10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