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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칼럼]영화 ‘길복순’, 패어런팅을 모른다
한국판 여자 존윅인가?
기사입력: 2023/04/05 [10:46]  최종편집: ⓒ TOP시사뉴스
칼럼니스트 김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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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복순>이 3월 말에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

청부살인이 본업인 킬러이자 10대 사춘기 딸을 키우는 엄마의 이야기다. 사람을 죽이는 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이 공존하는 데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영화로 만들었다.

변성현 감독은 전도연 배우와의 대화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배우의 고민이 다름 아닌 자식에 대한 것임에 착안하여 ‘배우’라는 직업을 ‘킬러’로 치환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사람 죽이는 일과 사람을 기르는 일.

반대되는 이것을 대칭점으로 극대화하기 위해 킬러와 엄마라는 캐릭터가 나오게 된 것이다.

어린 길복순(전도연 분)은 학창 시절에 아버지(장현성 분)를 죽이면서 차민규(설경구 분)를 쳐다보며 미소 짓는다.

‘킬러의 탄생’이라고 하기엔 이상한 아니 요상한 장면으로 묘사된다.

최고의 킬러가 된 후 길복순은 같이 웃고 술 마시던 동료들을 무자비하게 칼로 찌른다. 친구, 회사동료, 섹스파트너, 심지어 자기의 아빠까지 살해했던 킬러가 자기 딸이 친구들과의 관계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사이코패스일까? 살인귀일까? 아니다.

이 영화의 상징과 구성을 면밀히 보면, 길복순은 킬러로 치환된 연기자로 해석하면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액자구조처럼 <길복순> 속 길복순의 영화(또는 드라마)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 속 이야기와 실생활과의 경계가 모호하게 비벼져있다.

상징을 풀어보면, MK킬러집단 회사는 연기자 매니지먼트이고, 그 회사는 연기자를 양성하고, 매 작품마다 A급 B급으로 분류하며 연기자를 보내는 매니지먼트 회사다.

연기자들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같은 회사 동료를 죽이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섹스도 한다. 영화 속에서 동료 연기자들과 연기할 따름이다.

변성현 감독은 영화 속에 수많은 힌트를 숨겨놓고 유희한다. 회사지령으로 내려오는 청부살인의 일을 ‘작품’이라는 대사로 계속적으로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복순은 차민규의 살인 지시가 시작되는 것을 ‘슈팅’이라는 말로 대체한다.

블라디보스톡의 장소나 복순의 해외출장 장소는 대놓고 세트장이라고 보여준다.

킬러인 복순은 사람을 죽이는 가운데에서도 딸 재영(김시아 분)의 전화 벨소리에 온 신경이 가있고, 일이 끝나자마자 전화를 걸거나 집으로 들어간다. 이 부분은 길복순의 현실이다.

이렇게 메타포와 비약의 방법으로 일상 속 일과 가정을 묶어 넣음으로 관객으로 하여금 혼돈을 주기도 하고 수수께끼는 푸는 마냥 유희를 즐기게 한다.

이야기를 전환하면, 이렇듯 우리의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직장에 출근하면 온통 집안 걱정, 집에 있을라치면 회사의 복잡한 일들로 우리를 얽매 버린다.

영화 <길복순>은 사람을 죽이는 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이 공존하는 데에서 오는 아이러니로 영화가 출발하였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부분은 ‘성과 가족’, ‘양육과 젠더’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싱글맘이 딸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10대 딸아이는 동성을 좋아함으로써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동성애 서사에 대한 부분은 따로 한번 정리하여 글을 올릴 예정이다.

한번 짚어 보고 싶은 부분은 이 영화의 철학적 서사로 가족이라는 사회 윤리나 규범의 불완전함에서 오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 단어 중 ‘페어런팅’(Parenting)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번역으로 ‘양육이나 육아’. 좀 더 구체적인 표현으로는 ‘부모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 장면부터 ‘엄마’가 값싼 여성 메이드 복장으로 등장하는 길복순. 역할 놀이 하듯이 말이다.

첫 장면에서 ‘엄마’ 또는 ‘주부’에 대하여 비꼬겠다고 선언하고 시작한다.

전 장면에서 딸과 공정한 경쟁을 논하던 엄마이기에 오다신이치로(황정민 분)과 싸움에서 공정한 싸움을 하자며 결투를 시작하지만 비겁한 술수로 승리를 쟁취한다.


마트 문 닫을 시간이라서 술수로라도 빨리 끝내야 했다는 핑계를 댄다. 영화의 첫 장면은 ‘이 영화는 이런 영화입니다’라고 전체 톤과 철학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길복순의 페어런팅은 이런 것이다.

길복순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받고 자라온 인물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자기 딸에겐 자신의 아버지처럼 키우고 싶지 않았기에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바르게 키워보려고 노력한다.

영화 <길복순>에서의 엄마는 책임과 무책임이 충돌하며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트에서 장 보고, 화초도 키우고, 식탁에 밥을 차려놓고 딸에게 진학이나 교우관계 이야기하며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 패어런팅이 되는 것일까?

그것으로 엄마라는 모습이 표현된 것인가. 영화속 유일한 가족을 가진 엄마 길복순은 킬러로 최고이지만, 딸에게 인생에서의 공정한 경쟁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쿨한척 하지 말라는 타박이나 받고, 딸은 솔직하게 비밀을 털어놓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만 엄마는 딸에게 비밀을 끝까지 숨기는 비겁함을 보여준다. 그런 엄마라면 응원하고 싶지 않다.

싱글맘이라고 해도 별로 동정이 가지 않는다.

사실 <길복순>에선 남자와 여자의 성 구분이 없다. <길복순>이 <길복남> 싱글대디라고 해도 똑같은 영화다.

이 영화 속 모든 캐릭터를 면밀히 보라. 결혼해서 가정을 가진 인물이 없다.

영화 시작점에서 하겠다던 특정 직업을 가진 싱글맘이 직업과 육아에 대한 갈등 이야기는 칼부림하는 액션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길복순 씨는 길을 잃었다.

캥거루족, 싱글 라이프, 애 낳지 않는 부부 등. 탈가족화가 가속화되는 요즘의 풍조 속에 페어런팅이라는 단어가 헌신과 희생으로 일구어낸 ‘부모의 역할’이 아닌 ‘부모노릇 하는 척’으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닐까.

인류는 부모가 되는 순간에 자식과 가정을 위해 온 힘을 다해 희생해 왔다.

페어런팅이 ‘희생’이라 말한다면, 길복순의 페어런팅은 ‘희생하는 척’하는 것이라 못내 씁쓸하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김진곤(영화감독)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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