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는 언제쯤 국민에게 믿음을 줄 건가
나라꼴이 엉망진창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은 진작부터 악명이 드높지만 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뒷걸음만 치는 모습이 가히 목불인견이다. 정치인들은 입만 열면 “나라의 주인은 국민” 이라고 떠들면서도 속으로는 끼리끼리 해먹을 궁리만 하는 모양이다.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하는 국민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가 보다. 국민을 개돼지로 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막장 정치’로 나라를 궤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 수 있단 말인가!
정치가 이 지경까지 추락한 데에는 여야 모두 책임이 있지만 주범은 누가 뭐래도 더불어민주당이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정치 초년병인 윤석열 대통령이나 오합지졸로 전락한 국민의힘이 집권 세력다운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탓도 결코 작다고 할 수 없으나 국회에서 자행되는 거대 야당의 분탕질로 이 땅에서 정치다운 정치는 찾아보기 힘들게 됐기 때문이다. 무려 169 석이라는 압도적 다수 의석을 등에 업고 마구잡이로 밀어붙이는 ‘입법 폭주’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다.
민주당의 무리한 입법은 전 정권에서도 자심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지난해 3월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하자 그야말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청와대 핵심 인사들을 비롯해 ‘뒤가 켕기는’ 정권 실세들의 사법 처리를 어떻게든 막을 요량으로 온갖 꼼수와 편법을 동원해 정권 교체 직전 야반도주하듯 일방 처리한 ‘검수완박’ 이 그 서막이었다. 뒤이어 고구마 줄기 캐듯 문제투성이 법안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불법 파업을 조장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일명 노란봉투법) ▲가뜩이나 주체할 수 없는 쌀 과잉 생산을 부추겨 막대한 재정 손실을 초래할 게 뻔한 양곡관리법 개정안 ▲‘직역 이기주의’ 논란을 야기한 간호법 제정안 ▲‘공영 방송을 국민 품으로 돌려주자’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방송계를 계속 움켜쥐려는 엉큼한 속셈을 감춘 방송법 개정안 등등. 심지어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인 ‘ 대법원장 임명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까지 등장했다.
이들 법안은 한결같이 ‘국민 갈라치기’ 내지 ‘ 지지층 결집’을 겨냥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농민과 비(非)농민 또는 쌀 경작자와 기타 작물 경작자, 의사와 간호사를 편가르기함으로써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흔들려는 노란봉투법 , 양곡관리법, 간호법이 전자라면 검수완박, 방송법, 법원조직법 등은 후자인 셈이다. 검수완박처럼 힘의 논리를 앞세운 공룡 야당의 우격다짐이 연출됐다는 것도 이들 법안의 공통점이다. 특히 의사는 물론 간호조무사 , 임상병리사, 응급구조사 등 간호사를 제외한 의료계가 모두 반대하는 간호법은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된다. 다른 법안들도 고약하긴 매한가지이지만 나중에 바로잡을 기회라도 있는 반면 간호법은 일단 제정되고 나면 원상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노동계, 교육계, 문화계 , 언론계 등에 이어 좌파가 또 하나의 진지전을 보건의료계에서 획책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악법’이 과거처럼 권력자 1인 또는 집권층 일각의 독재가 아니라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집단 의지’로 추진된다는 사실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민주당이 이른바 ‘쩐당대회’ 사태를 놓고는 ‘친명(親明)’과 ‘비명(非明)’으로 갈려 내홍 양상을 보이면서도 입법 폭주에는 그 많은 의원들이 단일 대오로 똘똘 뭉치다니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87년 체제’ 이래 ‘나라의 앞날이야 어떻게 되든 표만 얻으면 그만’이란 식의 저급한 후진 정치가 지금처럼 국회를 무지막지하게 지배한 적은 없었다.
윤 대통령의 집권 후 첫 거부권 행사와 국회 재의에서의 부결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다행히 폐기됐다 .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민주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후속 입법뿐만 아니라 다른 악법들도 무더기로 통과시키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거듭되는 거부권 행사에 따를 정치적 부담을 극대화시킬 심산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그렇다고 국익을 해칠 게 뻔한 악법들을 그대로 공포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입장이다.
적어도 내년 총선에서 국민이 표로 심판할 때까지는 뾰족한 묘책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도 민주당 작전대로 ‘표플리즘’의 약발이 먹힌다면 오히려 더 암담한 상황에 맞닥뜨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과 여당은 국난의 위기에 봉착한 현실을 직시하고 지금까지의 안일하고 어정쩡한 태도를 일신하고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정치 ’를 서둘러 복원해야 한다. 아울러 애국 시민들과의 연대를 적극 모색하는 한편으로 의식 있는 야당 정치인 개개인에게 읍소해서라도 입법 폭주만큼은 반드시 막으려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가 무엇보다 요긴하다.
이 도 선 (yds29100@gmail.com)
언론인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 편집위원장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 지사장)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