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감사에서 드러난 체육단체의 비리가 상상을 초월한다. 경기단체 회장의 딸이자 부회장이 선수의 훈련수당을 횡령하는가 하면 협찬 받은 경기물품을 빼돌려 착복한 경기단체 사무국장도 적발됐다. 편파 판정, 공금 횡령, 조직 사유화, 직권 남용이 곳곳에서 행해졌으니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지난 15일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제2차관이 기자회견을 통해서 밝힌 내용은 경악할 만하다. 문체부는 지난해 2,000여개가 넘는 체육단체를 전수 조사하면서 문제가 불거진 493개 단체를 대상으로 특별 감사를 실시한 결과 337건의 비위 사실을 적발하고, 10개 단체는 횡령과 심판운영 불공정, 회계부정 등의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됐고 관련자 19명은 고발 조치됐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표 선수들의 훈련 수당 횡령은 ‘기본’이고, (회장)자녀를 임원진에 임명하는 파렴치함도 보였다. 모 협회는 협회 예산을 회장의 사적 소송비용으로 수천 만원을 집행해 환수조치 통보를 받았다. 모 연합회 사무국장은 이사회 의결 없이 독단으로 5,000만원이 넘는 차입금을 주무르다 들통나기도 했다. 선수보다 임원이 더 많은 기형적인 협회도 있었다.
대한공수도연맹은 조직 사유화의 전형이다. 아버지는 회장, 장녀는 부회장, 장남은 심판위원장, 처남은 국가대표 감독, 차남은 국가대표 코치를 나눠 맡았다니 기가 막힌다. 게다가 부회장은 대표 선수들의 개인통장을 관리하면서 1억4542만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17개 시·도 승마 및 수영협회는 혈연과 지연, 사제지간 등 지인 중심으로 구성된 이사회를 통해 회장을 선출하면서 장기 재직해 왔다. 대한유도협회는 임원 28명과 전문위원 19명의 과반수를 특정 대학 출신으로 채웠다. 씨름, 야구, 복싱 등 체육단체 곳곳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가장 시급한 곳이 바로 체육단체다.
그동안 체육계 일각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온 공금횡령, 편파판정, 승부조작, 폭력, 직권 남용 문제가 결코 돌발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결과로 가히 충격적이다. 어쩌면 뒷골목 풍토보다 못한 음습한 체육단체의 이 같은 구조적 비리가 체육계 전체에 도덕불감증을 확산시켜 온 계기가 된 것은 아닌지 묻고 싶을 정도이다.
사단은 지난해 5월 전국체전 서울시 태권도 고등부 선발전에서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비롯됐다. 우세한 경기를 펼쳤지만 탈락한 선수의 아버지가 자살하면서 억울함을 유서로 남겨 세상에 알려졌다. 고인(故人)은 더구나 태권도 관장이었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7월23일 국무회의에서 이를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10월엔 스포츠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방안의 실행·실천이다.
이번에 드러난 비리가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체육계 일각에서 불거져 나온 편파판정과 승부조작 시비, 횡령 의혹들은 단순한 일회성 돌발 사안이 아니라 뿌리 깊은 부패와 전횡이 곪아 터져 나온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체육단체에 비리 복마전이 난무하는 데에는 관리 감독을 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임도 크다. 차제에 체육단체 정상화를 위해 개혁의 메스를 들이대 환부를 수술해야 한다.
이재봉(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