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영자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향년88세 일본군위안부피해 유희남 할머니의 빈소가2016.7.12오전에 차려졌다 (영결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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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피해자인 유희남 할머니께서 지난10일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별세했다
88세의 고인은 폐암으로 그동안 투병해왔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0명 만 남았다
1928년 충남 아산군 선장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15세 때인 43년에 일본 시모노세끼에 끌려가2년 가까이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그는 마을에 처녀를 공출해 간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피하기위해 서둘러 결혼을 했다
하지만 친정으로 가던중 정체모를 남자들에 의해 납치됐다
고인은 생전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나타난 남자 둘이 나를 끌고 갔다
결혼 했다고 했는데도 서류상으로 확인이 안된다며 막무가내 차를 태웠다"고 증언했다
며칠 밤 낮 차와 배를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시모노세끼의 군 부대 앞이었다
위안부 생활은ㄴ 지옥 같았다 하루에도 수 십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으며 게으름 피운다는 이유로 매 맞은 날이 부지기 수였다
관리자에게 아프다고 말했다가 되레 흉기에 찔리기도 했다
급히 치료받아 살아났지만 상처와 휴유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2차 대전 종전으로 한 국에 돌아왔지만 이후의 삶도 녹록지 않았다
위안소에서 당한 일이 너무 수치스러워 가족에 돌아길 마음을 먹지 못했다고 \
절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려고 한적도 있었고 그렇게 죽지봇해 여기저기 떠돌다가 가정을 꾸렸고 자식을 키우며 보따리 장사를 하게 됐다
하지만 자식들에게도 일본군 위안부 였다고 말하지 못했다
고인이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시작한 것은 남편과 사별하고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으로 간 20112년 부터였다
그 는 2년뒤 "제국의위안부"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일본군의 동지로등으로 표현한 박유하 세종대교수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에 일본총리 산케이신문등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도 참여했다
이 소송은 최근 해당 법원에서 기각 됐지만 고인은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위안부 피해 역사의 유네스코 등록을 주장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 됐다 발인은 12일 오전 9시 정지는 경기 분당구 성남추모 공원이다
유희남 할머니의 별세는 우리국민 모두의 아픔이며 슬픔이며 분노를 자아냅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영면 하시기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본사 서훈기자 중앙일보 채윤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