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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같은 배춘희 할머니를 생각하며
웃음많고 그림 잘 그리던 소녀 같은분 배춘희 할머니
기사입력: 2016/07/20 [09:54]  최종편집: ⓒ TOP시사뉴스
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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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영자  살아생전  배춘희 할머니는 정부에서 준 생활비를 모아 장학금 3.000만원을 승가대학의 장학금으로 내 놓았다


2016.7.12별세하신 유희남 할머니의 별세소식에 먼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느끼던 감정의 색깔은 어떠하든 마냥  눈물이 흘렀다

살아생전에 격었던 고초와 죽음에 이르는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을 이긴 사람  인간승리의 산 증인이기에 더욱

가엽고 애처럽다  못해   존경과 옷깃을 여미는 숙연한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어본다

하늘 나라 천국에서 눈물없고 고통없는 삶을 누리시라고 .....간 절히 기도해 봅니다

일본군 위안부피해 할머니들의 생각으로 젖어있는데 문득2014.6월 작년에 돌아가신 배춘히 할머니가 생각났다

"칠갑산을 즐겨부르고 웃음도 많고, 그림도 잘그리던 소녀 같은 분인데...."

일본군 위안부 후원시설인 .나눔의집' 안신권소장은 배춘희 할머니를 소녀라고 불렀다

192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난 배 할머니는 19세 꽃같은 나이에 일본군 정신대에 자원했다 정신대가 뭔지도 모르고 배를 골지않는다는 맖에 혹했다

이 후 중국만주로 끌려가 끔직한 위안소 생활을 겪었다

광복후 한국에 돌아왔으나 주변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일본행을 택했다

일본에서는 아마추어 ,엔카(일본대중가요) 가수생활을 하면서 고국을 떠난 설움과 외로움을 달랬다

80년대초 예순이 고국으로  되서야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외롭게 지내야 했다

할머니는 97년 나눔의 집 식구가 되고서야 웃음을 되찿았다

이후 꼬박꼬박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석해 왔다

배  할머니는  한.일 양국간의 갈등이 높아질때 마다 안타까워 했다  안 소장은 평소 일본방문객이 찾아오면  통역을  자청하는 배 할머니도 일본군 패해자 문제에 있어서만은 단호하게 공식사죄가 필요하다고 늘 말씀해 오셨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지난 3월에는 할머니께서 언제 갈지 모르지만 그 동안 모두에게 신세를 많아 졌다

다른 할매들도 다 좋은 사람들이고 이곳에서 행복했다'며 마지막 인사말을  남겼다고 소개했다

배 할머니는 생전에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을모아 3.000만원을 김포시 중앙승가대학에 장학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안 소장은  '할머니들은 옆에 같이 계시던 분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다음에 나인가보다'라시며 힘들어 한다"며 역사의 피해자들이 살아계실때 정부가 강력한  국제연대나 공조를 통해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할머니의 빈소는 분당 차병원 장례식장에서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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