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시" 배고파못살겠다 먹을것을 다오" 순수했던 집회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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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시사저널=임승환 기자]
과거 70~80년대 대한민국 노동시장은 가히 머슴살이에 불과 했다.
한국전쟁 이후 선택할 수 있었던 산업의 폭은 그리 많지 않았으며 봉제와 가발공장으로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몰려들어 노동착취와 인권유린, 근로시간과 모든 처우개선을 개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한국수출의 주역이었다는 역사는 지금에 와서 부인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노동착취와 인권유린(노동자에게)까지 예사로 일삼던 대한민국의 기업들, 일한만큼 대접도 해주지 않고 받지도 못했던 노동자들의 실태였다.
노동자 알기를 머슴처럼 업신여기던 시절. 감히 노조를 만든다는 것은 꿈속에서도 생각조차 못한 시절이 있었다.
사람취급 못 받던 노동자들은 인권유린을 당해도 당장 먹고살기에 급급하여 하소연조차 못하였고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분노, 성난 노도처럼 들고 일어섰다.
노동민주화의 성지인 울산에서 첫 노사 간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도, 더 이하도 말고, 일한만큼만 달라!" 그리고 "인간 대접을 해달 라,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이러한 분노는 삽시간에 거쳐 분노의 메아리가 울산에서 시작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선배 노동자들의 외침은 정말 단순했다. 일한만큼 달라!, 인간대접 해달라! 인간답게 살고싶다! 이 단순한 세 가지의 외침 속에 노조의 정의가 숨어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노조들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귀족노조” 또는 “깡패노조”라며 국민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노동조합 현실이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1987년도 노동자들은 오직 일한만큼만 달라는 것이었다. 정말 순수하고 정직한 노동운동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러나 지금 현제의 상황은 어떠한가 줘도 줘도 끝없이 더 달라고 떼를 쓰는 막가파식 노조가 됐다.
회사는 줘도 줘도 더 달라는 노조에게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응해준다. 회사는 망해도 나만 살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구조조정의 철퇴를 맞는 노조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용어가 1987년도 노동민주화 이전에는 없었다. 막가파식 으로 돈 더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노조 때문에 생긴 단어다. 예전에 노동자들이 외치던 “일한만큼만 달라”고 요구했다면 오늘의 비정규직은 세상에 빛을 볼 수 없다.
회사는 고육지책의 수단으로 값싼 노동자를 채용할 수 밖에 없는 실정에 이것이 바로 비정규직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다.
오늘날 구조조정의 철퇴는 노조에 의해 재탄생한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며 더욱더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비정규직의 설움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노사 간의 전쟁이 터지면 후유증은 결국 사측이라 볼수 밖에 없다. 노사합의 도출에 실패한 노조는 폭력적으로 변하고. 사측은 노조에게 손해배상 등 법적대응으로 맞선다. 그런데 문제는 법적인 절차에서 부터이다.
회사가 노조를 길들이고 조합원들에게 재산을 압류하는 제소를 한다고 해도 노조는 움추려 들지 않고 총파업이라는 최악의 수단으로 맞서고 있어 법적인 대응을 해도 결국 사측 스스로가 물러서는게 현실이다.
제 아무리 발버둥을 치고 사측에 위협을 가한다 해도 법적인 문제에 있어서 승리는 항상 사측이다. 대기업의 문을 닫게 만든 노조의 사례가 있다. 수년 간 노조와 회사는 밀고 당기는 법적투쟁을 하던중 마지막 대법원 판결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의 재무구조로 인한 감원은 당연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결이다. 길고 길었던 노사의 싸움에서 이긴 회사는 노조원 1백여 명 이상을 해고 시켰다. 문제는 그 이후다. 새로운 노조집행부가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을 단체협상에서 요구했다. 회사는 대법원 판결까지 뒤집고 해고된 조합원 전원을 복직시켰다.
회사는 망해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노조도 문제가 크지만 대법원판례도 무시한 채 노조에게 투항하고 아첨하는 사측이 더 큰문제가 아닌 가 본다. 바로 경제를 망치는 원인제공을 하고 있는 회사의 방침에 기업과 대한민국의 미래는 불투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