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I am Yet Not Die'
울산의 대표건설 업체 전(前)덕산 건설 대표 박태조씨의 인생스토리
1.그의 출생과 배경 (1929년~1999년)
2.그의 성장과 시련 (2000년~2009년)
3.그의 노년과 꿈 (2010년~현재)
2018년 3월, 본 저널의 취재사무실로 어느 노인이 두툼한 서류보따리를 가지고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박태조, 1929년 생인 그는 현재 90세이며 100세 시대의 산 증인으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44세에 아내와 사별하고 난후 줄곧 혼자 살아왔었고 자식 둘은 어릴적에 죽은 탓에 지금껏 의지하는 자도 없이 살았지만 술과 담배를 하지 않은 까닭에 지금껏 건강하며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의 생활은 울산 중구의 어느 작은 5평정도의 월세방에 살면 짧은 거리는 웬만해서는 도보로 이동하며 일요일이면 1시간을 걸어서 교회에 가는 신앙인이라고 자기를 소개하였다.
이것만 보면 그는 여느사람과 같이 건강한 늙은 이로 보겠지만 그는 사실상 10년 전만해도 전국건설시공능력 400위 안에 들었고 울산시 건설능력순위 3위의 전 덕산건설 대표이사였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에 참전하여 국가유공자3급의 정부보조금과 노인복지수당으로 생활하지만 10여 년 동안 그의 가슴을 짓누르는 억울함과 분통함 그리고 한 맺힌 그의 마음에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꺼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 (그가 한 이야기를 이야기 식으로 작성함)
1.그의 출생과 배경 (1929년~1995년)
그는 울산 태생으로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성장기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아 유복하지도 않았던 보통사람으로 학력은 지금의 대현초등학교인 대현국민학교 중퇴가 전부이며 젊은 시절엔 양복점에서 일하며 재봉일과 재단일을 배웠고 군대에 갔다 온 후에는 동두천에서 자기 가게를 가지고 열심히 일한 탓에 어느 정도 사업도 할 수 있는 재산을 모아 울산으로 내려왔다고 하였다.
그 후 아내를 만나 결혼하여 자식 둘을 낳아 행복한 생활을 하기도 하였고 경제부흥이 시작되던 70년대에 울산의 공업화가 시작되어 건설업에 뛰어 들면서 처음에는 일반건설업에서 출발하여 약 15년 후에는 전문건설회사 덕산건설로 발전하여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끝까지 자라지 못하고 일찍 사고와 병으로 죽고 아내마저도 암으로 세상을 달리하여 그 당시 경주세무서장으로 일하고 퇴임한 장인어른이 아내를 화장하고 난 뒤 유품으로 금목걸이를 주기도 하였다.
그 후에 건설업은 승승장구하여 커 나갔으며 어느 정도 돈도 모으고 재산은 늘어 주위에서 여자를 소개해주기도 하고 여자들도 찾아 왔지만 44살 이후에 그는 새 장가도 가지 않았고 돈으로 언제나 주위사람들에게 동정하며 불쌍한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기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이러한 독신생활과 친 인척이 없는 생활이 훗날 그에게 치명적인 불리한 미래로 이끌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몰랐었다.
2.그의 성장과 시련 (1996년~2009년)
그의 이러한 선행과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는 성품으로 그의 사업과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1998년 어느날 그의 매암동 집을 향하여 가는 어느 길에서 그는 고통하는 한 여자를 보았다고 한다. 그녀는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고 곧 큰 일이 날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그는 즉시 주머니에서 그 당시에 돈으로 십만원을 주어 치료하라고 건네었고 그 후에도 그녀를 만나 30만원을 주며 병원비로 건네었는데 아마 그녀는 심한 임신중독 탓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난 후 몸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와 그녀의 남편 배OO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그 부부는 얼마 후 그에게 찾아와 집세를 못 내어 쫒겨나게 되었으니 도와 달라고 하여 그도 혼자 살고 있는 집이라 방도 남고 해서 그 부부를 집에 들여 함께 살기도 하였으며 그 후에 매암동 일대가 철거하는 상황이 와서 박태조사장은 배OO에게 2천오백만원을 주어 집을 알아보고 따로 살게 하였는데 얼마 후 그는 박태조씨에게 또 다시 찾아와 아이가 아파서 돈을 병원비로 써버렸다고 해서 또 다시 같은 금액을 주었다고 한다.
그 후에 배OO도 마침 직장이 없어 보여 같이 일을 해보겠느냐고 하니 한다고 해서 회사일을 시켰는데 나이가 있는 터라 처음에는 운전수로, 회사 주임으로, 여느 사람과 같이 대해주었고 그도 나름 열심히 일한 탓에 과장으로, 영업부장으로 함께 일을 하였고 그런 와중에도 배OO은 아내와 이혼하고 새 장가를 가기도 하였다. 박태조씨의 사업은 배OO이 아니라도 승승장구하여 2000년대 이후 제법 큰 사업에도 뛰어들어 그가 건설한 대표적인 공사로는 국내 최대의 콘크리트 사이로를 제작한 성신양회와 정일탱크 터미널 공사등등 울산의 굴직한 건설공사를 수주하여 종합건설업체로서 2005년 건설의 날에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하기도 하였고 2006년에는 명절날 울산시에 2천만원 상당의 쌀을 기부하여 이웃돕기에도 함께 하여 지역신문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가운데 2008년 울산시 교육청에서 협약한 사업으로 약 320억원의 천곡고 등 20교 신, 증축임대형 민자사업(BTL)을 계약하여 여러 공사현장을 돌면서 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 그의 주위에는 배OO영업부장, 은퇴한 건설전문공무원등의 이사등의 사람이 있었고 나름대로 탄탄한 조직을 갖추어 회사의 계약과 업무를 위해 담당부서와 계약부서장에게 법인통장과 권한을 주어 추진하였다.
공사는 진행되어 순조로 왔으며 모든 것이 잘 돌아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공사는 2009년 2월에 준공을 하였는데 어느 날 준공확인필증 확인 결과 대표자가 바뀌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배OO으로,
덕산건설의 대표인 박태조씨는 그 공사의 주관사였으나 BTL사업상 별도의 (주)울산 학교사랑이라는 법인을 만들어 협약을 하였으며 대표는 당연히 박태조로 협약한것이 3일만에 대표가 바뀌어 버린것이다 그 과정에서 회의록이나 대표자변경에 관한 어떠한 서류도 작성한 일이 없었는데 준공확인필증에는 분명 대표가 배OO이라는 이름으로 작성되어 있었고 협약서에 날인된 법인 등록인감은 조사결과 명백한 위조도장으로 찍혀 있었다.
그 결과 그는 일체의 공사금액을 받은 적이 없는 탓에 결국 약 20억원의 하청업체에게 지급하지 못하여 2010년 2월에 최종부도를 맞아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당시 언론은 학교 BTL사업에 참여한 주관사가 부도를 맞기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의아해 하였고 단순히 철근 등 건축원자재 가격의 폭등으로 40억원의 손실을 입은 탓으로 돌렸지만 부하직원의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고 치밀한 대표자변경으로 거액의 돈을 빼돌린 부패하고 더러운 사건임을 그 누구도 밝혀주질 않았다.
그는 약 2년 후에 그 모든 것을 알았을 때에는 이미 주위 측근들의음모와 추악한 욕심에 희생이 되어 있었고 그것을 처리하느라 분주히 뛰어 다녔지만 그 때 나이는 80세가 넘어선 힘없고 배경없는 노인으로 여기고 그는 완전히 그들의 공모와 서류파기, 컴퓨터 증거처리로 자료는 사라져 버렸고 또한 2013년까지 배OO과 여러 소송과 마주하며 역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 동안 박태조씨는 여러번의 약물투약을 의심할 만한 사건을 겪었으며 다른 공사금액과 재산을 갈취 당하여 그 억울함을 호소하였지만 이 땅에 홀로 뿐인 노망난 노인취급을 받으며 90세의 홀로 의로운 싸움을 하고 있지만 그는 말하기를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고 울먹거렸다.
그 이후 박태조씨는 집과 부동산, 임야 등 모든 재산은 압류로, 빚으로 빼앗겼고 완전히 노숙자로 전략하여 어느 조그만 교회에서 몸을 의탁하여 지금까지 버티면서 돈이 생기면 소송과 고발 고소로 청와대는 물론 법무장관, 경찰청, 국회와 여러 사람을 통하여 변호사, 검사, 법무사등을 만나 호소하였지만 철저한 그들의 올무와 조직적인 더러운 연줄과 인맥에 막혀 그의 사건은 노망든 노인의 푸념으로 취급받아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제까지 죽지 않고 살아 그들의 사기사건을 폭로하고 이 땅에 정의가 살아 있음을 꼭 보고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3.그의 노년과 꿈 (2010년~현재)
이제 그의 나이 90세가 된 지금 결국 그의 평생의 일군 덕산 건설은 최종파산이 결정되어 채무 70억을 해결하지 못해 결국 폐업신고 되었지만 그의 꿈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이 사건을 해결하여 돈을 찾고 명예와 회사를 살리는 것보다 이 나라에 정의가 공의가 존재하며 온갖 부정과 부패 그리고 공직자들의 부정으로 어두워진 기업환경을 바꾸어 개선하여 부디 자기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겨서는 안되며 만일 그 모든 재산을 찾는 다면 자기로 인하여 피해본 하청업체의 빚을 다 갚으며 남은 재산을 불우한 이웃과 또한 자기와 같이 억울하게 사기당하고 노숙자로 내 몰린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사용하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덕산건설 사회기부 보도
http://www.uj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77#05HV
덕산건설 회생절차 보도
http://m.iusm.co.kr/news/articleView.html?idxno=555987
국무총리상 자료
http://m.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7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