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문화
사회문제와대책
이 일걸 간도학회장의 우리땅 간도지역(동북3성) 소유권변천과정 -2
독도수호 간도회복을 위한 우리의 노력
기사입력: 2022/01/24 [15:09]  최종편집: ⓒ TOP시사뉴스
이일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 일걸 간도학회장의 우리땅 간도지역(동북3성) 소유권변천과정 (2)

▲©이일걸 간도학회장

 이 일 걸 (한국간도학회 회장)

약 력

성균관대학교 학사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 석사,

 

성균관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국제정치외교학 전공)

 간도지역 역사간도분쟁사 연구한중외교사 연구

 

본 top사사뉴스 편집부 에서는  한국외교문화영토 분야에서 역사적으로 독보적인 연구와 논문으로  알려져 있는 이일걸 박사(간도학회 회장)의 논문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있는 국민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간도지역 지도 변천과정에 나타난 간도영역 고찰

(2016 한국간도학회 학술세미나 발표)

 

셋째, 고려시기의 영토가 요양, 심양까지 미쳤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허인욱은 속자치통감, 금사, 고려사, 등의 사료의 분석에 근거하여, 두만강 이북의 간도 일부까지도 고려의 행정구역으로 편제하였으며, 숙종2()1097) 전후 시기에는 경박호까지 진출하는 등 윤관의 여진 정벌로 고려의 동북계가 두만강 이북의 간도지역까지 확장된 것으로 보았다.

특히 공민왕 시기의 심 지역 수복정책에 기록이 나타난다. , 공민왕은 1370년 이성계와 지용수를 시켜 동가강 유역의 우라산성과 동녕부를 점령하였으며, 고려정부는 요양-심양지역은 원래 고려의 영토였다고 동녕부에 통고하였다. 당시 지용수는 요양-심양 영토 사람들에게 요양-심양지역은 우리나라 강역이며, 백성도 우리 백성이다. ()도 공주를 고려에 시집보낼 때 요양-심양 땅을 탕목지로 하였다하여 요양-심양 지역이 대대로 고려의 영토임을 선언하였다.

 

또한 동녕 요양 지역은 명에 귀속되지 않는 고려 영토임이 였다. , 1372년 공민왕은 명의 정원위(요동)에 문서를 보내어 상고하건대 동녕과 요양은 일찍이 명에 귀속한 바가 없는, 곧 교화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우리 고려와 틈을 만드니 마땅히 이 요새지를 파수하고 방비하여야 한다고 하였다.고려 말에는 요동정벌론의 대두되어 졌다.

 

윤한택의 논문 고려국 북계 봉강(封疆)에 대하여에서도 고려의 북계는 고려 태조 왕건 시기부터 조선 태조 이성계 시기까지 요동의 지역적 경계는 요수, 요하였고, 그 지역적 거점으로는 요양, 심양, 철령, 개원 등에 걸치고 있었으며, 고려의 북쪽 경계 인식이 시종일관 요하까지였던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하였다. 따라서 고려의 서북쪽 국경을 막연히 압록강으로 설정한 기존의 견해에 대한 재검토하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하였다.

 

넷째, 이성계의 선대가 두만강 일대를 통치하였다. , 이성계의 선조인 목조는 원의 남경 5천호의달로화적이 되어 두만강북 일대를 통치하였고, 익조와 탁조가 그 직을 이어받았으며, 환조는 쌍성 천호로 공민왕 때 돌아와 벼슬하여 동북의 고토를 수복하고 삭방도병마사로 진급하여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다섯째,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한 이후에도 봉황성 이동 압록강 對岸 사이의 無人지대의 관할권이 계속 조선에 있었다.심지어 조선 근해의 경호권도 조선이 행사하였으며, 압록강에는 청의 선박이 떠 있지 못하였다. 使臣渡江은 조선 선박을 사용하였으며 도선장 관할은 조선에서 하였다. 뿐만 아니라 閑曠지대는 실제적으로 조선에 서 그 관할권이 소속되어 있었다. 즉 경원 및 훈계 越邊 2,3리에 집을 짓고 거주하는 자의 철퇴를 요구하니에서는 가옥을 철거하고 沿江 근처에 집을 짓고 경작하는 자를 엄히 금지하였다.

 

여섯째, 백두산 정계비 건립 이후에도 실질적인 국경선은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니었다. 이는 <도표 1>처럼 강희제가 18세기 초 측량하여 만든 황여전람도에 의해 만든 수많은 서양고지도에 그려진 조선의 경계선인 레지선’, ‘당빌선’, ‘본느선이 이를 말해준다. 특히Du Halde의 지도 중 레지의 비망록에는 봉황성의 동쪽에 조선국의 국경이 있다고 하였으며, Kaoli Koue ou Royaume de Coree 지도와 The Kingdom of Korea 지도에는 ‘PING-NGAN’이라는 지명이 만주에서 평안도에 걸쳐 표기되어 있다. 청의 황여전람도를 원본으로 한 1750년의 보곤디, 1794년의 윌킨스 등 수많은 서양지도에도 압록강 북의 봉황성 일대에서 두만강 위쪽 연변 일대로 이어지는 동간도 지역으로 국경 표시가 되어 있다. 특히 1924제작한 로마교황청의 조선말의 지도는 송화강 이동의 북간도와 동간도 일대가 한국령으로 표시하고 있다. 1989년 규장각에서 발견한 백두산정계비도’(규장각28876)조선정계비구역약도”(규장각15504)에서는 정계비로부터 이어지는 돌무지, 흙무지가 토문강, 송화강, 흑룡강으로 이어져 동해로 연결시켜 이 선 안의 연해주도 우리의 영토임을 표시하고 있다.

▲ 1899년 북변간도관리도(고등학교역사부도, 교학사 2003. 3.1 발행)     ©



ⓒ TOP시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