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서 생각할 것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이 거세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왜 선포했을까? 종북 반국가 세력 척결과 부정 선거 진상 규명을 위한 통치 행위라는 주장과 내란이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서 있다. 우리의 관심은 대통령 탄핵 재판에 쏠려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반국가 세력은 뿌리 뽑아야 하고 부정 선거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탄핵 심판 대상은 대통령만이 아니다. 국회를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은 지금까지 무려 18명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감사원장, 법무장관, 방송통신위원장, 경찰청장 등과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검사들이 그들이다. 해당 공직자들은 헌재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직무에서 배제된다. 국회의 탄핵소추권 남발로 국가 기능 마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헌재가 사건을 심리하려면 헌법재판관 정원 9명 가운데 7명 이상(심판정족수)이 출석해야 하지만 현재 6명뿐이다. 민주당은 임기 만료로 물러난 헌법재판관 3명의 후임 추천을 마냥 미뤄 왔다. 자기들이 탄핵 소추한 공직자들이 헌재의 기각 판결로 직무에 복귀하는 것을 늦추려는 속셈에서다. 이제 상황이 바뀌자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서둘러 추천하고 인사청문회도 여당 불참 속에 밀어붙였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인용 결정을 조속히 끌어내면 ‘시간 싸움’에서 이겨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이 그 배경이다.
대통령의 헌법재판관 임명권을 대통령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는가? 국민의힘은 반대, 민주당은 찬성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로 직무 정지됐을 때 황교안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려 하자 극력 반대했던 민주당이 이젠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아무런 설명도 없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은 임명할 수 있지만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법 해석이나 주장이 자기들 형편에 따라 그때그때 180° 달라진다면 그게 무슨 공당인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난주 양곡관리법과 농안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자 민주당은 “내란에 동조한 공범”이라고 맹비난하며 탄핵을 들먹였다. 이번에는 24일까지 쌍특검(내란·김건희 특검) 법안을 공포하고 특검 후보 추천을 의뢰하지 않으면 탄핵하겠다고 또다시 협박한다. 법안 공포 또는 거부권 행사 시한이 내년 1월 1일인데도 이런 억지다. 도대체 거부권 행사와 탄핵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것도 날짜까지 멋대로 못 박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민주당의 요구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심부름꾼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양곡법 등은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반시장적 포퓰리즘 법이다. 농민의 아픔을 왜 모르겠는가. 농민을 돕는 방안은 다른 데에서 찾아야 한다. “국민을 위한다는 구실로 채택한 정책이 무책임한 것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런 정책을 채택한 자들은 정책의 장기적 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유권자 지지 획득이란 단기적 이익만 생각했을 수 있다. 일관성 있고 견고한 정당 제도가 무너지면 포퓰리즘의 확산 확률은 올라간다.” 얀 베르너 뮐러가 ‘누가 포퓰리스트인가?’란 책에서 강조한 말이다.
국회는 그동안 경제를 살릴 법안들(반도체법·전력망법·인공지능기본법 등)은 내팽개쳤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된 2025년도 예산안은 대통령실·검찰·경찰·감사원의 특수활동비를 한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거대 야당의 횡포와 보복성 분풀이의 결과다. 민주당은 예산안을 단독 통과시켜 놓고 “예산이 부족하면 추경(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라”고 했다. 나라 살림을 구멍가게 운영하듯 꾸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무책임한 태도다.
정치가 안정됐다고 해서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면 경제 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이 코앞인데 우리 정치권은 무한 정쟁에 빠져 국익을 챙길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 경제는 내리막이고 안보와 외교도 흔들린다. 탄핵의 강을 빨리 건너야 한다. 진영논리를 뛰어넘어 국민 통합을 이루고 미래를 열어 갈 정치인들이 왜 안 보이는가?
저자소개
류동길 (yoodk99@hanmail.net)
숭실대 명예교수
남해포럼 고문
(전)숭실대 경상대학장, 중소기업대학원장
(전)한국경제학회부회장, 경제학교육위원회 위원장
(전)지경부, 지역경제활성화포럼 위원장
저 서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 숭실대학교출판부, 2012.02.01
경제는 마라톤이다, 한국경제신문사, 2003.08.30
`정치가 바로 서야 경제는 산다` 숭실대학교출판국, 201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