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기도회5일 날 강사 손양원 목사의 손자
안경선 선교사 간증
2023년 다니엘 기도회 5일차에는 한국교회의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의 손자 선교사가 강사로 올라왔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순교와 저항, 그리고 용서와 사랑의 목회자이며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순교자이신 손양원 목사님은 잘 알지만 손 목사님이 양자로 키운 가해자인 안재선씨에 관해서는 거의가 잘 알지 못하던 차에 그의 아들 안경선선교사가 강단에 올라와서 그 동안의 사역과 선교사로 살게 된지를 간증하였다.
안경선 선교사는 자라나면서 아버지 안재선에 대해서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손목사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르고 자라셨다고 하였으며 그냥 엄격하신분이셨고 집안이 넉넉지 않아 그가 고3 때 돌아가시면서 유언으로 ‘신학교에 가라’는 말씀을 하신후에 장례식장에 손 목사님의 가족들이 참석하고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을 읽고나서야 아버지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민감한 시기에 그는 자신의 정체성과 혼돈의 시기를 지나면서 아버지의 유언대로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었지만 몇 년동안 목회의 어려움과 하나님앞에 나아가면서 급성폐렴으로 한 쪽을 절제하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고 결국 족쇄와 같았던 아버지의 허물을 벗게 되었고 손양원 목사님의 깊은 사랑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앞에 무너져 개척교회와 목회자로서의 삶을 살아 올수 있었다.
그러다가 목사청빙을 앞두고 있다 「국민일보」에 자신의 이야기가 소개되면서 여러 군데 강사와 인터뷰등을 하던 중 여수 애양원에서 강사로 초빙받고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결국 강단에 섰지만 5분간 아무말도 못하고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온 교회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하였다.
그 때의 상황은 평소에 잘 부르지 않던 ‘거기 너 있었는가’ 찬송을 부르는데, ‘너 거기 있었는가, 두 아들 주검 앞에 놓여 있을 때, 거기 있었는가.’, 그런 음성이 들리더라고요. 견딜 수가 없어서 나가려고 했어요. 그때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받으시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손 목사님이 두 아들 주검 앞에서 기도하시는 환상이 보였어요. 저도 괴로워서 몸부림치고 있는데, 예배 인도하시던 목사님이 “안재선의 아들, 안경선이 목사가 돼서 왔습니다”라고 하셔서 단상에 섰어요. 말이 안 나오더군요. 10분 동안 울기만 했어요. 교인들도 당황했겠죠. 그런데 여기저기서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다 같이 울고 난 후 설교를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처음으로 손 목사님과 두 아들, 삼부자 묘소에 갔어요. 사실, 너무 늦게 찾아뵌 거죠. 처음으로 헌화했더니, 그때 손 목사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렸어요. ‘네가 재선이 아들이냐?’, ‘네, 제가 아들입니다.’, ‘네가 목사가 되어서 내 앞에 찾아왔구나. 참 어렵게 돌고 돌아서 여기까지 왔구나. 내가 너를 환영한다. 그 목소리가 끝나니까 양쪽 삼촌들 목소리가 들리면서 환영해 주셨어요.
그 후로 그는 손양원 목사님의 손자로 살면서 ‘손양원기념관’ 관장과 KBS에서 다큐멘터리 출연 요청등 많은 일을 하였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서는 하나님이 또 다른 부르심을 주었다고 한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윌슨의 하나님, 손양원 목사님의 하나님인데, 너도 그들처럼 한센인들을 섬겼으면 좋겠다, 그 사랑을 받아서 네가 이어갔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때 저는 못 한다고 했어요. 감당할 수 없다고 했죠. 하루 종일 울었어요. 함께 간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너한테 단체를 세우라는 것이 아니다. 너 혼자 그냥 마음을 쏟으면 안 되겠느냐?’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한국을 떠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브론디의 한센인을 섬기는 사역을 하면서 살아오게 되었다고 간증하였다.
한 알의 밀알이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고 손양원 목사님을 시작된 에수사랑의 거룩한 전염이 시대를 흘러 세대를 거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결과를 보는 듯 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