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조선일보는 <내 월급 30%가 4대보험․세금으로 빠져나간다>(9/6 김민철 선임기자 http://bitly.kr/dKGW) 제목의 기사를 내놨습니다. 지폐로 만들어진 자신의 넥타이가 싹둑 잘려나가는 것을 보고 얼굴이 새빨개져 당황해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일러스트로 큼지막하게 함께 배치해 ‘세금 폭탄’ 이미지를 강화했지요. ‘내 월급의 30%가 세금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은 사실일까요?
∆ ‘내 월급의 30%’가 세금으로 빠진다고? 놀라서 얼굴이 새빨개진 직장인을 그려넣은 조선일보 기사
조세부담률이 대체 뭐길래…설명도 안 해준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올해 19.2%에서 내년 20.3%로 오를 전망이다. 여기에 내년 사회보험료율 9.8%를 더하면 국민들이 수입의 30.1%를 세금과 사회보험료로 내는 셈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조세부담률이 기본적인 계산법이나 의미조차 설명하지 않았는데요. 국회예산정책처(http://bitly.kr/IHgz)에 따르면, 조세부담률은 “1년간 한 나라 안에서 만들어진 경제적 가치(국내총생산(GDP))에 비해 총 조세수입의 비중이 얼마큼인지를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단순화하면 법인을 포함해서 국민들이 생산해 낸 소득 중에서 얼마만큼을 각종 세금으로 부담하느냐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조세부담률은 “법인을 포함해서 (전체)국민들이 생산해 낸 소득 중에서 얼마만큼을 각종 세금으로 부담하느냐를 나타내”는 지표이며, “조세수입이 그 나라의 경제에서 얼마큼의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가늠하고 국가 간 비교를 할 수 있는 지표”로 사용됩니다.
한편, 조세부담률과 비슷한 개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국민부담률인데요. 국회예산정책처는 “조세부담률과 비슷한 개념에는 국민부담률이라는 지표가 있습니다”라며 “국가가 가입을 의무화하거나 재정에서 지급을 보장하는 각종 공적 사회보험에 대한 보험료 부담까지 조세수입에 더해서, GDP 대비 비율을 산출한 지표”라 소개했습니다. 즉 조세부담률에 사회보험료 부담률을 더한 것이 국민부담률인데요. 조세부담률과 마찬가지로 ‘조세 수입 및 사회보험료 수입이 그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할 뿐,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는 세금 수준’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조선일보가 내세운 30.1%, 즉 ‘조세부담률에 사회보험료율을 더한 부담률’이 바로 국민부담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스스로 산출한 숫자가 ‘국민부담률’이라는 점도 말하지 않았고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비슷한 개념으로서 ‘국민 개개인이 부담하는 세금 수준’과 거리가 멀다는 점 역시 짚어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민의 세금 부담이 커졌다’고 과장했죠.
상식적으로 각자의 소득 수준과 경제적 상황에 따라 세금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습니다. 통계청의 e-나라지표에서도 “각 개인의 조세부담률은 각자의 소득수준, 소비행태, 재산보유상황 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조세부담률이 20.3%라거나 국민부담률이 30%라고 해서, 내가 내는 세금 부담 비율이 실제로 그 수준인 것은 아닙니다.
조선일보가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조세부담률에 들어가는 ‘국세’ 안에는 각 개인이 내는 소득세도 있지만 삼성․현대 같은 대기업이 내는 법인세, 부동산 부자들이 내는 종합부동산세, 상속세와 양도소득세 등도 포함됩니다. 기획재정부는 8월 23일 배포한 보도자료(http://bitly.kr/hDX1)에서 올해 조세부담률이 증가했다는 일부 기사에 대해 “금년 상반기 세수 증가가 주로 지난해 반도체 호황에 따른 법인세 증가, 일시적 부동산 거래 증가에 따른 양도소득세 증가 등으로 인한 것임을 감안해야 한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법인세와 양도소득세가 늘어나 조세부담률 수치가 커졌다는 것이죠. 법인세와 양도소득세는 보통의 임금 소득자들이 내는 세금이 아닙니다. ‘월급에서 빠져나갈 세금’을 고민하는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라는 겁니다.
실제로 조선일보 보도보다 무려 1달이나 앞서 이 수치를 보도한 한국일보는 <올해 조세부담률 20% 돌파 전망… 정부, 재정확대 ‘공론화’ 나선다>(8/5 https://bit.ly/2QbrTVa)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상대로 한 증세 조치 등에 따라 ‘세수 풍년’이 지속된 게 가장 큰 배경”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정부가 내 월급 통장에서 세금으로 30%를 강탈해가고 있다고 둔갑시킨 것이죠.
인상 논의 중인 사회보험료도 모조리 인상분으로 계산
조선일보는 ‘조세부담률’을 앞세워 ‘월급에서 세금만 30%로 빠져나간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사회보험료 부담률’도 상승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는 30%라는 수치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하면 조세부담률과 비슷한 ‘국민부담률’이 나온다는 점을 말하지 않은 채, “월수입 500만원인 직장인 A씨는 올해 건강보험·국민연금·고용보험 등 4대 보험료로 월급의 8.5%인 42만5000원(연 510만원)을 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4대 보험료 인상이 줄줄이 예고되면서 내년엔 월급의 9.8%인 48만8500원, 연 586만원을 내게 생겼다”고 강조했습니다.
여기다 “건강보험료율은 올해 6.24%(사업주와 근로자가 절반씩 부담)에서 내년엔 6.46%로 오를 예정”, “국민연금재정추계·제도발전위원회가 얼마 전 내놓은 국민연금 보험료 개선 방안 중 유력한 안(案)은 현재 소득의 9%인 보험료를 내년부터 11%로 올(리는 것)”, “고용노동부는 내년부터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보험료율을 현행 1.3%에서 1.6%로 올리는 내용의 정부안을 마련할 계획” 등 4대 보험료 ‘인상안’들을 나열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습니다.
이렇게 길게 보험료 인상을 열거하다보니 마치 보험료가 엄청나게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조선일보 스스로도 보도했듯 결과적으로 예상된 4대 보험료 부담률 인상폭은 8.5%에서 9.8%로 1.3%에 불과합니다. 심지어는 이것도 조선일보가 각종 추정에서 뽑아낸 예상치입니다. 국민연금 인상의 경우 여러 안을 놓고 이제 막 논의 단계에 접어들었을 뿐이며, 고용보험과 건강보험 역시 조선일보가 보도한대로 모두 ‘인상 계획’이 마련되어 있는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어떻게 해서든 ‘세금 폭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최대 인상 추정치 1.3%를 반영한 9.8%를 더해 세금만 30.1%’라는 ‘큰 숫자’를 부각한 겁니다. 눈물겨운 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숫자로 혹세무민하는 조선일보
그나저나 조선일보가 극구 ‘공포’스럽다고 묘사한 ‘사회보험료율 1.3% 인상’, ‘조세부담률 20% 돌파’는 정말 그렇게 엄청난 인상폭일까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세계적 수준과 비교하면 오히려 낮은 편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공개한 ‘OECD국가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 (2015년 기준)’을 보면 OECD 평균 조세부담률은 25%이지만, 우리나라는 18.5%에 불과했습니다. 조선일보 말대로 부담률이 20.3%로 인상되더라도 OECD의 2015년 평균에 한참 못 미칩니다. 국민부담률 역시 OECD 평균은 34%지만 우리나라는 25.2%로서,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30.1%가 되어도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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