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엔비디아 조직을 만든 젠슨 황의 3가지 조언
2024년은 엔비디아의 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올해 들어 엔비디아의 주가는 70% 급등해 시가총액(시총) 2조 달러를 넘어섰어요. ‘석유재벌’ 아람코를 제치고 전 세계 시총 3위 기업이 됐습니다. 올해 시총 2위 애플을 뛰어넘을지 주목 받고 있고요.
엔비디아는 ‘칩’ 설계하는 회사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 카드의 메인 연산을 책임지는 칩 GPU(Graphics processing unit)는 엔비디아의 트레이드마크죠. 암호화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2017년 이후 암호화폐 채굴(프로그램 연산) 수요가 늘어나면서 GPU 몸값이 올라가고 품귀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함께 날개를 단 기업이 엔비디아였습니다.
하지만 GTC 2024 키노트에서 엔비디아의 공동창업자이자 대표님 젠슨 황(Jensen Huang)은 인공지능, 로봇, 디지털트윈 등 컴퓨팅 산업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 전반을 언급했습니다. 게임 그래픽 처리로 득세한 GPU가 딥러닝 연산에 적합하다는 게 발견된 이래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이 닿아있는 거의 모든 IT 영역에 인프라로 자리잡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습니다.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엔비디아의 리더십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것은 얼핏 당연해보입니다. 하지만 젠슨 황의 리더십과 엔비디아의 조직문화는 유독 호평을 받는 편입니다. 그러면서 (테슬라 같이 리더십과 조직문화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빅테크 기업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엔비디아의 내부에도 관심이 쏠리는 요즘입니다.
실리콘밸리 내에서 독특한 조직이다?
엔비디아 조직에 관해 몇 가지 흥미로운 숫자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엔비디아는 2023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평균 이직률이 5.3%에 그치는 빅테크 기업이다. 반도체 업계 평균 이직률이 19.2%라는 걸 고려했을 때 엔비디아의 이직률은 크게 밑도는 수치라는 걸 알 수 있다.
2. 엔비디아가 공식적으로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시점은 15년 전, 2008년 금융위기 당시였다. 엔비디아에서는 “채용되는 것보다 해고당하는 게 어렵다”는 농담이 나오는 이유다. 고용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3. 엔비디아 직원 수는 2024년 2만9600명이다. 삼성전자가 30만 명 이상, 애플이 15만 명 이상의 조직 규모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엔비디아의 조직 규모 자체는 기업의 시가총액, 사회적 임팩트보다 현저히 적다.
4. 엔비디아는 2021년부터 ‘구성원 몰입도 조사’를 연간이 아닌 분기별로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만 명에 육박하는 조직 구성원 전체의 업무 현황과 몰입도를 조사하는 것이다. 1인당 생산성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는 분위기다.
5. 엔비디아는 HR 플랫폼 글래스도어가 선정한 ‘2024년 일하기 가장 좋은 직장’ TOP3에 이름을 올렸다. 엔비디아는 2위를 차지했다. 익명의 직원 리뷰에 기반을 둔 연간 순위에서 엔비디아는 4년간 TOP5에 들었다.
6. 젠슨 황의 두 자녀는 엔비디아에서 일하고 있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 자녀가 재직하는 경우는 실리콘밸리에서 보기 드문 케이스로 여겨진다.
지금의 엔비디아 조직을 만든 젠슨 황의 3가지 코멘트를 통해 엔비디아가 일하는 방식과 30년 가까이 회사를 이끌어온 젠슨 황의 철학에 관해 살펴보려 합니다.
1.CEO의 역할은 무엇인가?
젠슨 황은 지금도 직접 보고를 받고 회사 돌아가는 사정에 밝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다단계 보고 체계를 지양하기 때문에 CEO에게 직접 보고하는 직원만 50명이 넘습니다. 각 프로젝트에서 잘 정리된 보고서가 아닌 메일로 “5가지 우선순위”에 대해 직접 적어서 젠슨 황에게 일상적으로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젠슨 황은 왜 이러한 업무 및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추구하는 걸까요? 2024년 스탠포드 경영대학원과 나눈 대담에서 젠슨 황이 했던 말에서 조직 관리에 대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직함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최고경영자(CEO)는 가장 직접적으로 보고를 받아야 하는 주체입니다. 그래야 조직 관리에 드는 에너지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리더가 소유한 지식(information)이 소위 ‘자리’를 만들어주는 조직문화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표가 가진 정보가 너무 소중한 기밀인 나머지 두세 사람과만 공유한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I don’t believe)”
“CEO로서 저는 모두가 이 회사를 위해 기여하길 바라요. 그러니 CEO의 역할은 복잡하고 모호한 사안에 대해 추론(reasoning)하고, 여타 구성원들이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이끌며 영감을 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겁니다.”
“(CEO를 포함한) 매니지먼트 팀은 탁월한 인재가 이 회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하면서 일생에 중요한 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습니다.” -엔비디아 창업자 : 젠슨 황 CEO
이처럼 탁월한 인재가 지지를 받으며 일하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informed)라고 젠슨 황은 정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전을 바라보고 조직을 이끄는 대표와 인재 사이에 최소한의 보고 체계를 두는 식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이죠.
직원과 대표가 직접 소통하면서 CEO가 알고 있는 정보, 시장 상황, 가설, 미지수 등을 가감없이 공유하는 조직문화가 엔비디아의 코어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젠슨 황은 이렇게 문제를 추론하고 돌파구를 함께 고민하는 ‘교류’의 과정 자체가 인재에게 권한과 동기를 부여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소규모 조직”을 구축한 원동력이라고요.
“저의 정보, 생각은 늘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열려있습니다. 팀원들은 그러한 저를 알고 있고요. 물론 상황은 매번 복잡하고 풀기 어렵겠지만, 저는 구성원들이 이걸 잘 헤쳐나갈 것을 믿습니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구성원들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제 역할이죠.”-엔비디아 창업자 : 젠슨 황 CEO
2.질문과 정보 공유의 중요성
이처럼 정보 공유와 지적 소통에 열려있는 리더의 자세는 그가 직원들과 어떤 스타일로 커뮤니케이션하느냐에서도 드러납니다.
젠슨 황은 본인의 리더십 제1원칙이 ‘질문과 관점을 건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일단 현재 팀원이 처해있는 상황과 고민, 의견에 관해 경청한 후 그에 대해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질문해서 파악하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추론과 해결책 구상의 과정을 문답을 통해 만들어간다는 의미죠.
그의 언어로 풀어보자면 리더는 ("조직원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수준으로 그의 입장과 관점을 이해하고서") 조직 내 아이디어를 보강하고,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 우선순위를 세운다고 묘사합니다.
“저는 리더로서 직원들에게 질문과 관점을 건네는 데 시간을 쏟습니다. 많은 시간을 직원들과 마주 앉아 그들이 사업 전략, 프로덕트 로드맵, 팀 빌딩 등을 고민하도록 돕습니다.”
“CEO가 모든 걸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대표는 숲을 볼 수 있습니다. 덕분에 거의 모든 일에 가치를 부여할 순 있죠. 리더가 직원들이 놓칠 수 있는 관점으로 질문을 던져 핵심을 건드릴 수 있다는 뜻이죠.”
“구성원들이 본인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들에게 질문을 던져 그들이 놓쳤던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조직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일상적으로 수행한다면 굳이 비전 선포식을 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하게 공유할 수 있습니다.”
3.”어느 누구도 보스가 아니다”
젠슨 황의 ‘질문 리더십’은 자율적인 조직문화와 의사결정 구조가 전제될 때 작동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엔비디아 기업 블로그에는 팀 내에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아이디어를 내 리더십 경험을 했던 인턴의 후기가 올라와 있을 정도로 자율성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젠슨 황은 이러한 조직 내 분위기에 관해 아래와 같이 표현하기도 했죠.
“(보통 실리콘밸리에서는 리더에게 커리어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는 따로 커리어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조직 내에서 커리어를 스스로 쌓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형성하는 데 집중합니다. 어차피 자율성이 주어지기 때문에 엔비디아 안에서 본인의 업과 길을 찾아가면 됩니다.”
자칫 자율성은 수평적이면서도 중구난방인(?) 조직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으로 커진 조직이 빠르게 성장하며 치열하게 시장 경쟁을 해야 하는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위해 마냥 탈중앙화한(!) 상태를 좌시할 순 없죠. 그렇기 때문에 자율성은 매우 명확한 목표와 우선순위를 요구합니다. 젠슨 황이 말한, 그 유명한 조언이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어느 누구도 보스가 아닙니다. 오직 프로젝트가 보스입니다.”(Nobody is the boss. The Project is the boss.)
어쩌면 엔비디아의 평균 이직률이 적은 것, 근속 연수가 여타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위와 같은 분위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봅니다. 회사 웹사이트에서 자신 있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엔비디아의 패기는 실제 조직의 성장세, 직원들의 몰입도와 만족도, 성과로 이어진 기업 활동의 뒷받침을 받습니다.
“엔비디아는 단 하나의 팀으로 움직입니다. 사내 정치나 계층 구조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보고 라인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기술을 기반으로 한 프로젝트 중심으로 팀이 구성됩니다.”
정직하고 끈질긴 게이머의 자세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젠슨 황의 발언은 ‘게임을 하는 자세’에 관한 언급이었습니다. 본인을 고등학교 시절 ‘게임광’이었다고 묘사하는 젠슨 황은 게임이 주는 경험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게임할 때 실수했다고 나를 다그치지 않았어요. 원래 게임은 지고, 지고, 또 지고, 그러다 이기는 것이니까요. 오히려 실패하면서 도전할 때 게임이 가장 즐거웠습니다. 무언가 시도해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도하면 된다는 걸 그때 배웠습니다.”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그가 30년 가까이 엔비디아 대표로 일하며 빅테크 기업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오랜 기간 현역으로 뛰는 데 힘이 됐을 듯합니다. 첫 상품을 말아먹었을 때(?!), 주가가 80% 곤두박질치면서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하려 했을 때, 경쟁사였던 AMD가 엔비디아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무성했을 때도 젠슨 황은 “끝내 이기는 게임”을 포기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참고 : 이 모든 지옥을 헤쳐나온 젠슨 황)
물론 노장에게도 현실은 복잡하고 문제는 산적해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신약 개발과 로보틱스 산업은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과 시장 경쟁에 돌입했습니다. 지금 고공행진을 하는 기업이라 해서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 될 것이라 보장할 순 없어요. 수십 년간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담금질한 엔비디아의 역사가 그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당장 최근 들어 이슈가 되고 있는 엔비디아 내 월급 루팡(?!) 문제도 넘어야 할 새로운 산 중 하나입니다.
엔비디아 주가는 전년 대비 4배 가량 껑충 뛰었습니다. 10년간 12000% 상승했다죠. 그러다 보니 오랜 기간 엔비디아 재직하며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소위 OB들이 엄청난 자산을 축적했어요. 내부에서는 이들이 ‘반쯤’ 은퇴한 것처럼 일한다는 불만이 제기됐습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직원 주도로 성장하는 조직 문화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케이스”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한 젠슨 황의 대응은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그는 엔비디아 전체 미팅에서 공개적으로 이 이슈를 짚었습니다. (물론 뾰족한 솔루션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모두 모여 회사 아젠다에 대해 논하는 자리에서 젠슨 황은 이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응했다고 합니다. 직책이 높고 근속 연수가 높을수록 책임감을 가지고 리더답게, 자발적으로 일하라고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참고 : In an internal meeting, Nvidia's CEO addressed a question about employees in 'semi-retirement' mode as unusual tension grows)
산전수전 겪으며 지금의 사업, 기업, 조직을 만든 젠슨 황. 앞으로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까요? 엔비디아 조직문화는 10년 뒤 어떤 모습일까요?
솔직함과 노련함이 엿보이는 젠슨 황의 관점을 통해 지금 우리의 조직과 전략, 비전(방향성)을 점검하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