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 우려에 기술기업 인수 불허..금지 법안 제정하기도
국제사회에서 차이나머니가 경계의 대상으로 등장했다. 개발도상국을 상대로는 ‘고금리 사채놀이’를 하고 선진국에 대해서는 투자가 아닌 ‘핵심 기술 빼내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4일 미국, 유럽,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세계 각국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 자본의 자국 기술기업 인수에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우리나라도 ‘차이나머니’ 공습이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도 자금력을 앞세워 세계 곳곳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국기업들은 국내 보험, IT, 패션, 게임 기업들을 잇따라 인수했다. 앞으로도 중국이 세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낮고 경쟁력이 취약한 반도체, 의료장비, 제약, 바이오테크 기업에 대한 M&A시도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어 주의가 요구 되는 부분이다.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이웃나라 파키스탄은 일전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파키스탄과 중국이 맺은 일부 에너지 프로젝트에는 중국에 30년간 연 34%의 수익률을 보장하는 이면계약 합의 사항도 있는 만큼 중국 자금을 멋모르고 끌어들인 게 파키스탄 외환위기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고 ‘또 다른 일대일로의 인질’(Another Belt and Road Hostage)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차이나머니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SCMP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이 첨단기술 확보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음에도 중국의 대외직접투자(ODI) 규모는 2016년 1천961억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지난해 1천246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미국 법률회사 데커트의 제러미 주커는 "이러한 경향은 기술 부문에서 중국의 투자에 대한 각국의 경계심이 표현된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이후 이러한 경향이 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중국이 자국의 첨단 기술기업을 인수한 후 해당 기업의 기술을 군사 부문에 응용하거나, 인수한 기업을 이용해 민감한 데이터를 빼낼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정부 주도의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를 내놓으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중국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미국은 올해 들어 총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자본의 투자 제안을 퇴짜 놨다. 중국 하이난항공(HNA)그룹의 미국 헤지펀드 스카이브릿지 캐피탈 인수, 중국 투자회사의 반도체 장비업체 엑세라 인수,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등이 모두 국가안보를 우려한 미국 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컨설팅 기업 로듐그룹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는 18억달러에 불과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0% 넘게 급감했다.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자본의 미국 기업 인수를 심사하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해 앞으로 중국 자본의 미국 기업 인수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런 까닭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 국가에 상환 불가능한 거액의 자금을 빌려주고 인프라 운영권을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일대일로 사업 자금이 제도권 금융보다 문턱은 낮지만 갚지 못하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채업자를 떠올리게 한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미·중 무역전쟁의 ‘첨병 역할’을 하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은 저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에서 “중국은 수표책을 흔들며 막대한 자금을 저금리로 대출한 뒤 천연자원 독점 사용권과 현지 시장 개방을 얻어 낸다”며 중국의 신식민주의라고 비난했다. 더구나 최근에는 미국의 선례를 따라 중국 자본의 기술기업 인수에 퇴짜를 놓는 나라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독일 정부는 중국 기업 옌타이 타이하이의 독일 기계장비업체 라이펠트 메탈 스피닝 인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나타냈고, 옌타이 타이하이는 결국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독일 정부는 라이펠트 메탈 스피닝이 생산하는 원자력 분야 고강도 재료가 옌타이 타이하이를 통해 핵보유국인 파키스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독일 최고의 로봇 제조기업 쿠카가 중국 기업에 인수된 것에 놀란 독일 정부는 기간산업에서 정부가 인수합병을 제한할 수 있도록 법을 강화했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財信)은 "독일이 이처럼 외국 자본을 거부한 것은 처음으로, 독일 선례는 유럽 각국에 전염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5월에는 캐나다 정부가 대형 건설업체 에이컨(Aecon) 그룹을 중국 국영기업 중국교통건설유한공사(CCCC)에 매각하기로 한 15억 캐나다달러(약 1조2천억원) 규모의 계약을 불허했다. 중국 국영기업이 중국 정부의 장악 아래 운영되기 때문에 캐나다 국가안보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SCMP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중국 자본의 미국 기술기업 인수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며 "다른 서방 국가들도 이전처럼 쉽게 중국 자본의 진출을 허용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차이나머니에 대한 경계심이 글로벌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이를 전면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비책은 전무하다. 더욱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발표를 계기로 중국 자본 침투가 더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돼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침투된 중국의 거대자본이 국내 산업을 좌우하면서 기업들의 기획능력과 기술, 아이디어등이 유출되어 산업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차이나머니의 규모가 더욱 커지고 국내 유입도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미국이나 유럽등 선진국에 발맞추어 지금이라도 유비무환 사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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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