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609) 잃어버린 우리 북방영토 간도 되찾기 운동에 앞장서온 육락현
독도는 알아도 간도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간도지역 연구기관인 백산학회와 한국간도학회는 그동안 확보한 자료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차원에서 ‘간도는 우리땅! 고구려는 우리역사’를 주제로 찾아야할 우리땅 간도를 알리고 홍보하는 전시 행사를 해오고 있다.
그 중심에 간도되찾기운동본부(북방민족나눔협의회) 육락현(73) 상임명예회장이 있다. 잃어버린 우리 북방영토 간도 되찾기 운동에 앞장서온 인물이다. 한국간도학회 이사이자 영토건립추진위원장, 백산자료원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간도되찾기운동본부(간도본부)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우리 조상의 얼과 문화, 삶의 터전이었던 북방영토 간도를 되찾고자 2004년 설립했다.
간도본부의 모체인 백산학회는 1966년 4월 창립하여 올해로 반세기를 맞았다. 우리민족이 이 땅에 어떤 과정을 거처 살게 되었는지 규명하겠다는 취지에서 연구소를 마련하였다.
간도가 일본에 있는 섬입니까? 이는 육락현 회장이 간도 관련 민원 업무차 교육부를 찾아갔을 때 대화 과정에서 교육부 직원에게 들은 질문이다. 우리 국민들의 간도 인식이 얼마나 희박하고 역사교육정책이 미력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은 우리 조상들의 뿌리인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중국 영토 내에서 지워내고 중국사로 편입시키는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펼쳐왔다.
역사를 왜곡시키는 동북공정은 중국에서 아직도 진행중이다. 2012년에는 만리장성을 고구려, 발해 산성을 포함해 이만리장성으로 늘려 보도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우리 고대사의 요람인 간도 역사도 함께 사라져가고 있다.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면적의 2배가 넘는 간도 지역은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 발해시대까지 우리의 북방영토였다.
고려시대 국력이 약해지면서 간도의 영토 주권은 점점 멀어져갔다. 조선 중기 들어서는 청국이 간도(만주)를 봉금지역으로 묶어놔 이후 주인 없는 땅으로 방치되기도 했다.
황무지로 버려진 이 지역을 조선인들이 조, 청 양국의 관리를 피해 개척해 왔다. 만주에 해당하는 간도는 동북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과 내몽고 일부에 속해있다.
백두산정계비를 근거로 하면 두만강 이북, 토문강 이동 지역인 동간도 혹은 북간도와 압록강 이북 지역인 서간도를 포함한 남만주를 가리킨다.
서북으로는 요동의 봉황, 정북으로는 길림이남, 동북으로는 연길, 용정과 화룡까지로 고구려 초기 수도인 환인과 집안도 역시 서간도 내에 위치한다. 넓은 의미로는 산해관 이동의 심, 요지역과 연해주를 포함한 만주 전체를 일컫는다.
중국 동북3성 거주 조선족은 한때 200만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60만명 정도로 조선족 없는 조선족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
육락현 회장은 요즘 더욱 바빠졌다. 간도본부의 오랜 숙원사업인 영토관 건립사업의 개관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 자락에 위치한 영토관은 우신구 간도본부 4대 회장이 제공한 2층 건물(자료관 60평, 전시실 37평)로 준공허가는 이미 받아놓았다.
내부 시설은 국민 후원으로 추진하고 있다. 간도문화체험마을 안에 간도, 대마도, 독도, 이어도까지 우리나라를 알리는 영토관을 만들어서 운영할 계획으로 뜻있는 분들의 많은 후원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동북아대륙의 동쪽인 한반도에서 흑룡강 유역과 내몽고를 거쳐 발해만에 이르는 동서부 지역 일대는 우리민족의 생활터전이었고 이민족과의 전투 현장이었다.
그러나 근대 조선 이후 압록 두만 양 강을 경계로 한반도 내에 갇혀 살면서부터 안타깝게도 국민들의 뇌리에서 북방 고토 간도가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민족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 사실을 규명하기 위하여 지난 반세기 동안 자료발굴과 지속적인 연구 끝에 간도는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영토였음이 밝혀졌다.
“1887년 윤 4월16일 간도영유권문제로 조청(朝淸) 국경담판에서 우리측 대표 이중하 감계사는 ‘내 머리는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내 국토는 단 한치도 축소할 수 없다’며 목숨을 걸고 지킨 땅이 바로 간도영토입니다“
간도는 엄연한 우리 역사요 우리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정부는 중국의 위압에 눌려 아무런 대비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은 2002년 일방적으로 동북공정을 발표하여 노골적인 역사 침탈극을 전개하였다. 그런데도 한국의 역사교육은 거꾸로 가고 있다.
1996년 대학교 역사과목이 필수에서 선택과목으로 변경되었다. 정부 산하 각 기관은 물론 국민들조차도 우리 역사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점차 멀어져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간도본부가 일반 시민은 물론 특히 자라나는 다음 세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간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에 발 벗고 나섰다.
그동안 부산, 대구, 제주 등 전국을 돌며 우리땅 간도를 알리기 위한 전시 행사를 꾸준히 해왔다.
2004년 이후 국회의원 회관 로비와 전국 주요 도시의 전철역을 비롯한 공원 광장 등 순회 전시도 86회에 이르고 있다.
백산학회, 한국간도학회에서 개최한 간도관련 학술대회만도 2004년부터 현재까지 19회에 이른다. 중고등학교 순회 전시도 반응이 좋다.
1909년 9월4일 일제가 청나라의 남만주철도 부설권과 푸순탄광 채굴권을 얻는 대가로 청나라에 간도를 넘겨주는 간도협약을 체결했다.
국제법상 조약은 당사자인 대한제국 정부를 배제한 채 제3국이 참여하고 권한을 침해한 협약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원칙이기 때문에 이 협약은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다. 간도협약 체결후 107년이 지났지만 지금부터라도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국제법 교수의 자문에 의하면 시효는 없다. 다만 불리할 뿐이다.
간도본부는 지금까지 해온 단편적인 간도 알리기 행사를 지양하고 대대손손 우리나라 영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여 이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한 영토관을 추진했다.
간도문화체험마을에는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고려, 조선(간도)관과 독도, 대마도, 이어도 등 영토관이 들어선다.
또한 청과 우리나라 경계를 명백하게 금석(金石)으로 새긴 백두산정계비를 비롯하여 독립운동의 요람인 용정의 일송정, 용두래 우물, 조선족 생활 주거지(용정, 흑룡강성, 요녕성)도 복원한다.
북방민족나눔협의회에서는 2017년까지 간도지역을 방문하지 않고도 고구려 유적지와 백두산, 연변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간도문화체험마을 조성을 완료하여 청소년 체험교육장을 제공할 예정이다.
육락현 회장은 백산학회에 1981년 3월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2년 전에 총무직을 넘겨주고 2선으로 물러났다.
중국이 추진해온 동북공정도 실상을 알고 보면 간도문제다. 남북한 통일이 이뤄지면 간도영유권과 조선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보고 이에 대비한 중국의 사전포석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그래서 그가 나섰다. 2004년 간도되찾기운동본부 출범에 이어 간도학회를 만들었고 2006년 9월4일 간도의 날을 제정하여 첫 선포식을 했다.
해마다 6월6일 현충일에는 간도본부 회원들이 애국 선열들의 묘를 참배하고 그 유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해왔다.
충북 진천에 있는 헤이그 밀사 이상설 가묘,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는 이범윤 의병장, 경기도 양평에 있는 외교의 대가 이중하 묘소 등을 참배하였다. 2014년에는 충북 음성에 묻혀 있는 애국선열 서상무(1856~1925년) 변계관리사의 묘소를 찾아가 참배했다.
간도협약 체결후 107년이 지났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잃어버린 우리땅 북방영토를 바로잡아야 한다. 간도 되찾기 운동. 시간이 갈수록 그 실현 가능성은 멀고 희박해지지만 그렇다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간도본부 육락현 상임명예회장은 이제 조급한 마음을 비웠다. 간도 되찾기 운동은 시효가 있을 수 없다고 보고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전개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상설 전시장 구상도 그런 이유다.
그는 또한 간도운동본부 10년사를 제작중이다. 우리땅 간도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이름이라도 남겨두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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