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를 위한 정부는 없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정부는 위기를 극복하고자 각종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 긴급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실업과 수입 감소로 어려워진 가계를 돕기 위해 전 국민에게 가구당 최대 100만 원을 지급하도록 하는 등 많은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 코로나 19 이후 하락하는 국제 금융위기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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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이 긴박하여 정부가 신속히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있으나 임시대책에 불과하다. 국채를 발행해 현금을 살포하는 식의 재정 지원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19년 38%에서 금년에는 3차 추경까지 포함하면 45% 수준으로 급격히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번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경제 활동을 활성화하는 길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규제를 획기적으로 철폐해 기업 의욕을 높이는 것이다.
사실 규제 완화는 역대 정부들이 주장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호에 비해 추진 실적은 실망스럽다. 규제 완화가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는 규제 완화로 손해 보는 계층의 반대 때문이다. 규제 완화로 인한 소비자 전체의 이익이 기득권 공급자의 손실보다 월등히 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눈치를 더 본다. 공급자는 비록 소수일지라도 자기의 생존이 걸린 일이므로 강력히 반대하는 반면 소비자는 다수이지만 이익이 절박한 것이 아니므로 단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이용자보다 택시 기사를 의식한 타다 규제가 대표적인 예다.
규제 개혁은 소비자 이익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소수 공급자의 이익보다 다수 소비자의 손실이 더 큰 규제는 원칙적으로 철폐해야 한다. 기득권 보호를 위한 규제의 가장 큰 폐해는 혁신과 변화를 가로막아 경제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혁신과 변화를 규제로 막는 것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는 것이다. 변화를 일시적으로 지체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과거 영국에서 마부들의 일자리를 지키려고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한 행위와 같다. 각종 규제가 난무하는 나라에서 창의성 있는 기업이 나올 순 없을 것이다. 기업 활동이 침체되고 경제가 둔화되는 나라에서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나? 공정한 분배에 앞서 분배할 파이가 커져야 한다. 기득권 보호 규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이다. 소비자 중에는 저소득층, 장애인, 노약자 등 많은 사회적 약자도 포함되어 있다. 기득권 공급자를 위해 규제하는 경우 사회적 약자가 피해 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사회 정의에 맞지 않는다. 과거에는 농민 보호를 위해 쇠고기 수입을 규제해 쇠고기는 비싸 부자들만 먹을 수 있었는데 수입 자유화로 이제는 저소득층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원격진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통이 불편한 지역 거주자, 거동이 불편한 사람, 생업에 바빠 시간 내기가 어려운 사람 등 사회적 약자들이 많다. 하지만 일부 의사들은 오진 등을 우려하며 소비자 건강을 위해 원격진료를 규제해야 한다고 한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26개국이 원격진료를 허용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이 부유한 의사들의 이익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은 부당하다. 처방전이 필요 없는 의약품도 외국처럼 슈퍼 등에서 살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약사들보다 더 가난한 많은 소비자와 편의점이 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종종 정부는 소비자를 위하여 규제한다는 경우가 많은데 선택의 자유는 소비자에게 좋은 것이다. 정부는 선택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등을 충분히 홍보해야 한다. 소비자도 선택의 결과가 부정적이라고 해서 그 책임을 정부에 미루는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 규제 개혁 과정에서 손해 보는 계층에 대해서는 당연히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시적 생계 지원, 전직, 전업 교육 등을 해야 할 것이다. 혁신과 변화를 저해하는 규제를 하지 말라는 것이지 변화로 어려워진 계층을 방치하라는 것은 아니다.
아울러 소비자 보호 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 생산자들은 각종 조직을 통해 자기들 이익 보호를 위한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반면 소비자들은 모두가 ‘프리라이더’가 되어 구심체가 없다. 정부는 소비자운동이 시민운동으로 확산되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경제활동이 증가하는 등 산업구조의 큰 변화가 밀려오고 있다. 소비자 위주의 규제 혁신으로 우리 경제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자.
(※ 이 칼럼은 선사연 최종찬 공동대표가 동아일보에 오늘(2020. 05. 12) 기고한 내용입니다.)
필자소개
최종찬 ( jcchoijy@hanmail.net )
사단법인 선진사회만들기연대 공동대표
(전)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전) 건설교통부 장관, 대통령 정책기획 수석비서관
(전)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 조달청 차장, 기획예산처 차관
저 서
최종찬의 신국가개조론, 매일경제신문사, 2008. 6
아래를 덥혀야 따뜻해집니다, 나무한그루, 20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