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작가가 담아낸 고단한 여자의 일생
▲ © 애플TV에서 방영되고 있는 '파진코'드라마
|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1989년에 이르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역사가 우리를 망쳐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문제작 <파친코>를 요 며칠에 걸쳐 읽었다. 책상 위에 놓이지 못하고 책장으로 들어가게 되면 눈길을 주기까지 방치된다. 어떻게든 내 눈과 마주쳐야 빛을 볼 수 있는데, 글쎄 아내가 먼저 읽기 시작했다. 아내가 읽은 다음 펼치기 시작했다. 재일교포 디아스포라 자이니치에게 주어진 벗겨낼 수 없는 운명적 차별. 냉혹한 시선에 굴하지 않고 씨름하는 4대의 역사. 대를 이어 지속되는 저주받은 혈통.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들의 분노. 좌절. 체념. 절망으로 한(恨 )하는 현실 속에서도 삶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설움, 눈물이 있다. 모국을 잃어버린 고아요, 평생을 살아온 땅에서도 외면당하고 무시당하는 삶이란 생각하기도 힘겹다.
이민진 작가는 일곱 살의 나이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한 1.5세대 재미교포다. 어린 시절 가난 속에서도 헌신적인 부모의 뒷바라지로 예일대 역사학과과 조지 타운대 로스쿨을 나와 기업변호사로 일하다 병치레 이후 어린 시절부터 재능을 보인 글쓰기에 집중하게 된다. 2004년 단편소설들과 2008년 장편소설들을 통해 미국에서 뿐 아니라 국제적인 입지를 굳혔다.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얻고 남편이 도쿄금융회사에서 4년 재직당시 재일교포에 대해 눈을 뜨게 되고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취재와 청취, 공부와 가슴을 갈아 넣어 30년 만에 완성된 작품이 『파친코』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기형으로 태어난 훈이에게 시집간 양진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훈이는 자신과 달리 정상으로 태어난 딸 선자를 너무도 아꼈다. 언청이로 태어난 자신과는 다른 정상의 모습을 한 딸의 모습은 신비요 완벽함이었다. 선자가 유부남 고한수의 아들을 가져 나락으로 떨어질 인생이었지만, 이북에서 내려온 젊은 목사 백이삭과 혼인하여 오사카에서 고한수의 아들을 낳는다. 곧 이어 이삭의 아들 모자수(모세)도 낳았다. 똑똑했던 수재 노아는 자이니치가 넘보기 힘든 와세다에 들어갔지만 결국 출세를 포기했고, 파친코 직원으로 일했다. 숨어 살며 일본인으로 살아가려는 뜻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는 자살하고 만다. 동생 모자수는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아들 솔로몬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갇힌 세계를 넘어서 열린 국제인 살아가기를 열망했지만 결국 솔로몬 역시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일본에서 수재가 되고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여도 혈통을 어찌할 수 없었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탁월한 금융지식인이 되어서 자이니치의 신분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파친코로 돌아온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경계인으로 산 재일동포들의 피어린 도가니를 잘 그려내고 있다. 책의 제목 ‘파친코」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자이니치의 한계를 보여준다. 누구나 한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던져낼 수 없는 굴레가 있다. 연약한 몸을 이끌면서도 믿음으로 신실하게 살았던 백이삭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마지막 모습에서 엄존하는 고통과 아픔, 처참함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상과 다른 냉혹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시절에서부터 1989년에 이르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소설 속에 비친 한국의 근대사는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 나라 잃은 슬픔과 고통은 오롯이 국민들이 짊어져야 했지만,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무능한 정치인들이나 나라를 탐하고 점령한 일본도, 중국이나 러시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파친코』는 나라가 무너지고 시대가 망가져도 삶은 끈질기게 이어진다. 밟아도 뿌리 뻗는 잡초처럼.
거칠고 엄혹한 시절 4대로 이어지는 가족사를 통해서 식민지 시절 일본으로 건너간 동포들의 고통 받는 삶, 여전히 변하지 않고 현재까지 잔인하게 이어지는 인종차별 의 현실을 고발한다.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갔기에 광복과 분단, 한국전쟁을 겪지 못했지만 미군의 폭격과 패전의 경험, 민단과 조총련의 분열 속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야 했다. 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도 이방인으로 차별을 겪었지만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지속되는 실향을 겪고 있다. 무국적의 상태로 인해 여권이 없어 해외여행조차 불가능하다. 이 땅에서 생존을 이어가지만, 나그네로 걸었던 무수한 믿음의 선배들이 생각났다.
『파친코』에 등장하는 인물 중 일찍 죽음을 맞아 퇴장하지만, 내게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단연 백이삭이다. 남의 씨를 가진 선자를 아내로 맞아 그녀의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존재. 일반의 기준으로보자면 세상 물정모르는 낭만주의자로 보였을 것이다. 젊은 목사로 말씀사역에 충실했던 그는 신사참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투옥되었고, 고문과 굶주림 속에 깊은 병을 얻어 죽음을 맞고 만다. 속절없이 나약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비치는 백이삭, 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성도의 면모를 읽었다. 초라하고 병약한 모습으로 죽음 직전에 가족에게 드러낸 그의 모습. 마지막 모습은 슬픔보다 넉넉함과 참된 성도의 낭만이 여전히 깃들어 있음을 본다.
파친코는 고단한 여자의 일생을 담백하지만 무겁게 그려낸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떠올랐다. 허벅지를 베고 누워 들었던 힘겨웠던 시절의 이야기가 겹쳤다. 시대가 빚어낸 험난한 세월 속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희생과 포기를 강요당했는지. 힘에 넘치도록 고생하면서도 운명처럼 삶을 묵묵히 수납하고 걸어왔던 강인한 어머니의 삶을 새삼 되새긴다. 요셉과 이삭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명분을 가졌지만 실제 삶을 꾸려간 것은 양진과 선자 그리고 경희였다. 세상의 온갖 조명은 남성들이 받지만, 언제나 여성의 희생의 더미위에 세워진 것들이다. 여성에 대해 조망하는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다. 그 중에서도 빼어나 보이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매화가 터져 나오는 3월 다가선 봄과 함께 담담하게 『파친코』를 집어들면 어떨까?
이종인 목사
울산언약교회 담임목사
울산대학교 철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