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남 탓은 이제 그만!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대회’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폐영식과 K팝 콘서트로 11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세계 158개국에서 청소년과 지도자 4만3281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는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이달 1일 개영했다. 그러나 더럽고 배수도 잘 안 되는 화장실·샤워실·탈의실과 모기가 들끓고 폭염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숙소 등 열악한 시설과 온열질환자 속출, 곰팡이 달걀로 대표되는 비위생적이고 부실한 식사에 방만한 운영까지 겹치면서 초장부터 참가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급기야 5일 영국의 조기 퇴영에 미국, 싱가포르, 스위스도 합류하고 세계스카우트연맹은 대회 중단을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당초 기대했던 6000억 원 상당의 경제 효과는커녕 국격 실추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때마침(?) 한반도를 직격한 태풍 ‘카눈’을 피하느라 모든 대원은 8일 야영장을 떠나 전국 곳곳으로 분산됐다. 새만금 잼버리가 졸지에 ‘대한민국 잼버리’로 탈바꿈한 뒤에야 범국가적 총력 지원에 힘입어 별 탈 없이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 영국 등 조기 퇴영했던 국가들도 폐영식에 합류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잼버리를 무난하게 마무리함으로써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해준 종교계·기업·대학 및 여러 지방자치단체에 감사하고, 잼버리 대원들을 반갑게 응대해 준 우리 국민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잼버리’는 그런대로 잘 끝났다. 참가자 대부분이 한국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일부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좋은 인상들을 품고 우리나라를 떠났다. 예상 못한 난관도 극복하는 게 스카우팅이라지만 태풍으로 희생자가 발생했다면 그런 낭패가 또 없었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판을 완전히 바꿔 초장의 실패들을 만회할 전화위복의 기회가 주어진 게 불행 중 다행인 셈이다. 시민들과 종교계, 기업, 지자체 등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인정 넘치는 보살핌으로 각국 스카우트의 마음을 산 것이 국제적 개망신 일보 직전에서 나라를 구한 일등공신이다. 군, 경찰, 소방을 포함한 공무원들의 헌신과 바쁜 일정을 쪼개 멋진 공연을 선사한 가수들과 행사요원들의 희생도 한몫 톡톡히 했다. 중학교 때 배운 영어 속담 ‘All is well that ends well(끝이 좋으면 다 좋다)’은 이럴 때 쓰라는 표현 같다.
정치권은 그러나 대회 파행 조짐이 보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정쟁에 빠져든 이래 확전 일로다. 무사히 끝났느냐, 아니냐는 관심 밖이다. 대회 기간 내내 안절부절못하다 가슴을 쓸어내린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책임을 어느 정권에 덮어씌우냐로 이전투구다. 물론 천문학적 돈을 쓰고도 이 지경이 된 책임 소재는 반드시 가려야 한다. 감사원은 잼버리 유치가 확정된 2017년 8월 이후 준비, 운영, 폐영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들여다보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젠 정쟁을 잠시 멈추고 감사 결과를 지켜봐야 마땅하나 정치권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따지고 말고 할 것 없이 무조건 ‘네 탓’이란다.
끝까지 망쳤다면 모르되 잘 마무리됐는데도 논란을 키우는 건 온당하지 않다. 야영장을 가장 먼저 떠났던 영국의 주한대사관은 “한국의 선의와 문제 해결 능력에 놀랐다”며 우리 정부에 감사를 표시했고 다른 나라 대사관들과 세계연맹도 그랬다지 않는가. 야당이 물고 늘어지는 속셈은 뻔하다. 자기들의 실패와 비리는 감추고 정권에 타격을 주려는 심사다. 무리한 공격으로 헛발질이 잦은 것도 그래서다. “부산 엑스포 유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악의에 찬 저주가 그런 예다. 실수란 걸 깨달아서인지 한두 번 외치다 쏙 들어갔지만 행여 이 정권이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조바심을 영락없이 들킨 꼴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만금 잼버리대회로 국격과 긍지를 잃었다며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라고 말한 것은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그게 잼버리 유치에서 폐영에 이르는 6년의 대부분을 책임진 정권 수뇌의 입에서 나올 소리인가? 예의 유체이탈 화법은 퇴임 후에도 좀체 나아질 기미가 없다.
윤 정권도 전 정권 탓만 하다 5년을 허송한 노무현 정권을 본받을 생각이 아니라면 차제에 남 탓 버릇을 싹 버려야 한다. 설령 엉망진창을 물려받았더라도 출범 1년쯤 됐으면 사태를 적확히 파악해 대책을 세울 줄 알아야 한다. 그게 국민이 원하는 ‘프로 정부’다. 자기편이라고 싸고돌면 안 된다. 장관이든 누구든 책임이 있다면 읍참마속(泣斬馬謖)을 결단해야 한다. 다만 이번처럼 어처구니없는 사태의 재연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 공사비의 4배도 훨씬 넘는 운영비·사업비와 무려 99번에 걸친 공무원 출장의 적절성을 비롯해 파헤칠 것은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지레 겁먹었는지 벌써부터 “지난 정부에 대한 보복 감사”를 외치는 야당의 공세에 위축돼서도 안 되지만 만에 하나라도 정파적 입김이 들어가 국민적 의혹을 더 키우는 자충수는 절대 금물이다.
이 도 선 (yds29100@gmail.com)
언론인
(사) 선진사회만들기연대 이사, 편집위원장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