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정치인들을 탄핵하고 싶다
국민은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정치인들은 그런 국민을 배신하는 판을 펼친다. 정치가 미래를 만들어 가기는커녕 현재를 붙잡고 씨름하며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 혐오와 증오의 정치가 가관이다.
‘왜 사악한 사람과 집단이 권력을 잡게 되는가?’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쓴 ‘노예의 길’ 제10장의 제목이다. 이 책은 유럽에서 나치즘이 극성을 부리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실패하고 스스로 노예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음을 밝힌 명저다. 하이에크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가장 사악한 자가 정권을 잡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먼저 대중이 좋아할 만한 가장 낮은 수준의 원시적 본능이나 욕구에 가까운 사안을 찾는다. 이런 사안을 큰소리로 강조하고 반복해서 외쳐 잘 속는 대중을 지지층으로 확보한다. 그런 다음 선동가들을 앞세워 대중이 적으로 삼을 만한 표적(예컨대 부자들)을 만들고 증오심 조장과 부정적 선동으로 ‘그들’과 다른 ‘우리’를 단결시켜 권력을 쟁취한다. 전체주의자들이 권력을 거머쥐는 바탕은 바로 ‘생각 없는 대중’ 혹은 ‘무조건 충성하는 대중’이라는 게 하이에크의 주장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날 법한 현상들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고자 많은 국민이 좋아할 만한 사안을 내세운다. 재정 사정 안 따지고 퍼주기와 각종 혜택을 늘리는 공약이나 정책들이다. 그런 걸 바라는 국민을 ‘내 편’으로 확보한다. 사건·사고 등 어떤 기회를 포착해 의혹을 부풀리고 괴담을 퍼뜨려 문제를 만들고 한껏 키운다. 광우병이나 사드 전자파 괴담, 후쿠시마 오염수 파동 등에서 보아 온 편 가르기와 ‘내 편’ 결집 사례가 전형적이다. 사건·사고의 진실 규명이나 예방은 관심 밖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잣대는 없다. ‘내 편이면 옳고, 네 편이면 그르다’고 단정한다.
우리는 세계의 움직임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는 세상이다. 기술은 물론 산업 환경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매체들은 정치판의 허접한 갈등과 싸움 이야기와 가짜 뉴스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국회는 당대표 방탄을 위한 탄핵 카드를 사정없이 휘두른다. 법제사법위원회가 그 선봉이다. 검사도, 판사도. 취임도 안 한 방송통신위원장도 탄핵하겠다더니 대통령 탄핵까지 들먹이며 기세등등이다. 국민 청원을 내세워 대통령 탄핵 청원 청문회를 강행하는 건 탄핵을 위한 군불 때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 청문회는 국회법 등의 법적 근거도 없는 탈법적 발상이다. 민주당의 힘자랑은 지나치다. 토론과 타협 없는 다수결은 힘의 횡포다. 여당인 국민의힘의 당대표 경선도 한심하다.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비전 제시는 없고 그저 편 가르기와 혼탁한 말싸움질뿐이다. 국민은 울분을 토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라고 으스대며 시대 변화를 서슴없이 거스른다. 청문회는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증인과 참고인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는 자리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증인과 참고인들을 겁박하고 모욕하고 큰소리치며 단죄하려 한다. 경제도, 기업도, 국민의 삶도 정치가 바르지 않으면 꽃을 피울 수 없다. 정치가 낡은 규제의 벽을 헐지 않고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게 문제다. 시급한 반도체 공장 건설이 송전탑에 막혀 몇 년 동안이나 지체된 건 하나의 사례일 뿐이고 비슷한 일이 수두룩하다.
정치인들에게 묻는다. 민생과 경제, 국제 경쟁, 안보는 어쩌라고 미래 비전도 보이지 않고 허황한 싸움질만 하며 큰소리치는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대통령 거부권으로 폐기된 노란봉투법 등을 다시 입법하고 이런저런 특검법을 동원하는 게 그리도 중하고 급한가? 국민은 당신들을 탄핵하고 싶다. 경제는 당신들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고 하는 이유를 아는가? 당신들은 민생 팽개치고, 경제 발목 잡고, 법치 무너뜨리면서 자유민주주의 외치는 위선자 아닌가?
류동길 (yoodk99@hanmail.net)
숭실대 명예교수
남해포럼 고문
(전)숭실대 경상대학장, 중소기업대학원장
(전)한국경제학회부회장, 경제학교육위원회 위원장
(전)지경부, 지역경제활성화포럼 위원장
저 서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 숭실대학교출판부, 2012.02.01
경제는 마라톤이다, 한국경제신문사, 2003.08.30
`정치가 바로 서야 경제는 산다` 숭실대학교출판국, 2018.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