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위, 정작 당사자는 발언권이 없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불과 1.7%, 시급 170원 인상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23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3.6%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상률을 놓고 논란이 많은 것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 때문이다.
전 정부는 2018년부터 22년까지 최저임금을 16.4, 10.9, 2.9, 1.5, 5.1%를 인상, 42%를 올렸다. 연평균 7.2%인데 2000~2017년 평균 8.6%보다 낮다. 첫 2년에 과속을 한 것이 자영업자의 소득 감소와 폐업, 고용 감소로 이어져 기대했던 내수 진작, 투자 활성화, 고용 증대로 연결되지 못했고 소득 주도 성장은 실패로 끝났다. 셋째, 넷째 해의 인상률 2.9, 1.5%는 이 실패에 대한 자백이라고 보면 된다.
더 큰 문제는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때부터 법제화되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던 주휴수당을 시행령 개정으로 19년 1월부터 실제 적용에 나선 것이다. 일주일에 하루 유급 휴일을, 그러니까 닷새마다 하루 치 임금을 더 주라는 것이니 20% 임금 인상 효과가 있다. 최저임금은 19년에 33.1%, 2018~2019년 2년 동안 54.9% 인상된 셈이고 그 결과 2019년에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임금노동자가 339만명에 이르렀다.
이 주휴수당은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을 할 때만 주면 되니까 사용자들이 일주일에 15시간 미만으로 사람을 쓰는 “쪼개기 고용”이 성행하게 되었고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임금근로자가 2014년 86만에서 2022년 180만명으로 급증하게 되었다. 이제 주휴수당을 강행한 지도 6년이 지났고 지금까지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현재 받고 있는 임금을 한 푼이라도 줄여서는 안 된다는 조건 하에 주휴수당을 폐지해 버리면 이 가게 저 가게 옮겨 다니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면서 초과근무수당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구성도 고쳐야 한다. 근로자, 사용자, 공익 대표 9인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는 사실은 최저임금을 주고받고 있는 사람들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근로자 대표는 연봉 1억원 안팎의 고임금을 받는 사람들로 구성된 한노총, 민노총이, 사용자 대표는 경총을 비롯한 경제 단체에서 맡고 있는데 이들이 최저 수준의 임금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입장을 절감하기는 어렵다. 특히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는 300만명의 처지를 대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문제다. 근로자, 사용자 대표를 최저임금밖에 주지 못하고 있는 사용자들과 최저임금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 중에서 뽑자. 위원회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법원의 배심원 정도의 보수를 주면 희망자가 있을 것이고 고용부에서는 오리엔테이션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남의 임금을 결정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위원 수도 3~5명으로 줄여서 실질적이 토론과 설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전국에 하나의 최저임금만 있는 것도 고쳐야 한다. 서울과 강원도는 임금도 생계비도 수준도 다르다. 자동차 산업과 섬유산업의 임금 지불 능력이 분명히 다르다. 활력이 떨어지는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경험 없는 10대 젊은이들이 받을 수 있는 임금은 분명히 다르다. 우리 모두가 다 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가 기대하는 임금 수준도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 왜 모두에게 획일적인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하는가?
현행법상으로 업종별 차등화만 가능하게 되어 있는데 지역별 차등화부터 먼저 도입해야 옳다. 연령별, 업종별 차등화도 각 지역의 최저임금위원회에 맡기면 된다. 업종별 차등화는 사용자가 그 이상은 주기 어렵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반해 연령별, 지역별 차등화는 근로자 측의 “그렇게 많이 받지 않아도 좋으니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배경에 깔고 있다. 실제로 아일랜드는 최저임금을 깎아 가면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해 일자리를 늘린 결과 일인당 GDP가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나라를 만들었다.
지역별로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해도 선거로 뽑히는 지자체장이 다른 지역보다 낮은 최저임금을 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전국 단위에서는 정말 최저 수준의 최저임금을 정해서 지자체 장이 우선 좀 적게 올려서 투자 유치를 하는 것이 길게 보면 임금이 더 오르게 하는 길이라는 설득을 할 여지를 열어 주어야 한다.
작은 문제라도 모으면 크게 되고 풀기 어렵게 된다. 문제를 쪼개서 다양한 결정이 가능하게 하면 어떤 결정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지 비교해 볼 수 있게 된다. 전국 단위로 하나의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될 확실한 이유가 없으면 가급적 다양한 결정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클릭 ▶ (이 칼럼은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이 조선일보(24.09.20)에 게재한 글입니다)
박 병 원
한국비영리조직평가원 이사장
안민정책포럼 이사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전) 은행연합회장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전) 재정경제부 제1차관
(전)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