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현동 일제 은닉 지하 금 도굴 사건과 청와대 개입설
사건일지
1.최초 발견자 정충재씨의 일제은닉 보물찾기 (1993 ~ 2002.3 )
2.보물발견과 도굴꾼들과의 오랜 사투 (2002.3 ~ 2009.5)
3.욕망에 눈이 먼 대한민국의 권력자들과 매수인들
4.통일을 위한 하늘의 자금을 환수하라
1.최초 발견자 정충재씨의 일제은닉 보물찾기 (1993년 ~ 2002년 3월)
일제의 패망이 짙어지는 1940년, 일본은 히로히토 일왕의 동생 치치부 왕자의 주도로 아시아 일대의 금, 은 등의 귀금속과 유물을 약탈하는 이른바 ‘황금백합작전’을 전격적으로 실시 하였다.
약탈품 대부분은 필리핀을 거쳐 일본으로 옮겨졌지만 중국에서 약탈된 물건들은 한국을 경유하여야만 했다.
그로부터 약탈물을 실은 배들이 부산항에서 가까운 남구 문현동의 지하 어뢰공장으로 옮겨졌으며 해협이 연합군에 의해 봉쇄되자 수백 톤의 금과 유물을 임시로 보관하였다가 일본의 재건을 위한 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그 당시 지하의 어뢰공장 깊숙한 곳에 보관 후 조선인 건설인부 1,000여명과 함께 공장입구를 폭파하고 철수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는 단지 소문으로만 여겨졌을 뿐 어뢰공장은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한 동안 잊혀졌던 금괴 소문은 1987년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실제 주인공인 청와대에서 수년간의
정보와 들은 이야기들과 함께 일제의 어뢰공장의 지도를 들고 문현동의 여기저기에서 동굴을 파면서 1993년 초등학교 교사 출신의 작가 정충제(66세)와 손을 잡고 함께 보물찾기를 시작한다.
몇 년이 지나고 정충제씨는 박수웅과의 의견차이로 결별한 뒤 김 모씨와 함께 지하 어뢰공장이 있을 만한 곳을 조사하던 중 유독 1219-1번지의 땅이 중국에 대한 황금백합작전이 끝나는 시점인 1945년 7월부터 조선총독부 땅으로 소유가 이전 된 것을 발견하고 그곳의 지하 어딘가에 지하공장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 후 땅 주인을 설득해 굴착기로 굴을 파고 드디어 2002년 3월 지하 16미터 지점에서 높이 3미터, 폭 2.5미터, 길이 20미터의 수평 굴을 발견하게 된다.
지하굴이 물에 잠겨 있어 최초에 물기둥이 쏟아 올라 장관을 이루었으며 수중무인카메라를 집어 넣어 확인한 결과 가로 50센치, 세로 20센치 크기의 포대가 5층 높이로 쌓여있었으며 카메라를 통해 본 포대의 글씨는 분명한 일본어로 ‘이등충’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 순간에 10여년간의 노력과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 기뻐하였지만 그것이 그의 생애를 완전히 바꾸며 대한민국의 역사를 좌우하는 격동의 시간을 보낼 줄은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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